[공간을 통한 더 나은 일상/우리들의 공간 복지]
〈3〉 광주 동구 인문학당
젊음의 거리에 터 잡은 공유 공간
1954년 지어진 근대 가옥 본채에… 부엌-인문관 더해 2022년 개관
강연-요리교실 등 프로그램 진행… 2년 동안 약 2만 명 무료로 이용
9월 29일까지 문고본 기획전 열어
24일 광주 동구 동명동 골목길 끝자락으로 걸어가자 인문학당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산책로인 푸른 길 인근에 위치한 동구 인문학당(대지면적 867㎡)은 본채, 인문관, 공유 부엌 등 3개 건물과 연못이 있는 마당으로 이뤄졌다.
1954년 지어진 근대 가옥인 본채는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 3개 국가 건축양식이 묻어나는 독특한 건물이다. 대문에서 가까운 본채 2층 건물은 이탈리아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옆 본채 1층 건물은 일본식 유리창과 마루가 사용됐고, 한국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본채는 한집이지만 두 개의 집처럼 보이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본채를 비롯한 인문학당은 2022년부터 누군가의 집에서 모두의 집, 인문학 공유 공간으로 거듭났다.
● 인문학 공유 유일 공간
본채(건축면적 132㎡)는 인문학당을 설명하는 전시 공간과 로봇태권브이 등 만화책을 볼 수 있는 휴식 공간, 동아리 방, 다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새로 지어진 공유 부엌(43㎡)에서는 역사 깊은 동구의 요리법은 물론이고 건강한 밥상을 만드는 비법을 배울 수 있다. 이날 공유 부엌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떡 등을 먹으며 공부하고 있었다.
시민책방으로 신축된 인문관(125㎡)에선 다양한 인문 프로그램 강의가 진행된다. 이날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국어사전을 편찬한 최종규 작가(51)가 ‘손바닥에 피어난 꽃과’를 주제로 문고본(文庫本)에 대해 강의했다. 최 작가는 “문고본은 손바닥만 한 작은 책이라는 말”이라며 “다양한 목적으로 제작된 책은 우리말 꾸러미로 삶을 채우는 보따리”라고 설명했다. 이날 수강생 29명 중 28명은 40∼70대였고, 1명은 10대 소녀였다. 김은희 씨(60·광주 동구 운림동·교사)는 “최근 인문학당이 있는 것을 알고 두 차례 강의에 참여했다”며 “한국 문고본을 주제로 한 오늘 강의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인문학당은 9월 29일까지 문고본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 문고본 기획전을 연다. 문고본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값이 싸고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작은 책이다. 기획전에서는 국내 각 시대를 대표하는 60여 종의 문고본 3500권이 전시됐다. 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기획자는 “전국에서 인문학을 중심으로 무료 공간 대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유일하다”고 말했다.
● 젊음의 거리에 피어난 인문학
인문학당이 자리한 동명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다. 동명동은 일제강점기 철거된 광주읍성의 동문 밖에 형성된 주거지역으로 한때 역사, 교통, 교육, 행정의 중심으로 역할을 했다. 1990년대까지 고급 주택, 한옥이 많은 부촌(富村)이었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에 있던 전남도청이 2005년 전남 무안군으로 이전하면서 동명동은 활력을 잃었다.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면서 카페는 물론 음식점, 주점이 잇따라 들어서며 활력을 되찾았다. 현재 일반음식점 130여 곳, 카페 73곳, 의류·장식구 등 소매업 46곳 등 가게 380여 곳이 영업하고 있다. 하루 평균 동명동을 찾는 사람은 2019년 6900여 명에서 지난해 2만296명으로 늘었다. 임덕심 광주 동구 문화경제국장은 “동명동을 찾는 사람의 44%가 20대 청년”이라고 말했다.
동명동이 활성화되자 2010년대 후반 서울의 한 부동산개발업자는 인문학당 본채를 사들인 뒤 철거하고 상가건물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골목길 끝자락이고 반대편은 교회 주차장인 탓에 상권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신축을 포기했다. 이에 광주 동구청이 인문학당 본채를 매입한 후 건물을 철거하고 공용주차장을 지으려고 했다.
이색적 근대 가옥인 인문학당 본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주민들은 건물을 개보수해 공유 공간으로 만들자고 동구청에 제안했다. 옛것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뜻을 확인한 광주 동구청은 2년 동안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쳐 건물을 개보수해 2022년 1월 인문학당 문을 열었다.
70년 역사를 품은 인문학당 본채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인문학당에서 해마다 강의를 하고 있다. 인문학당 본채를 건축한 김성채 씨(1906∼1987)가 김 교수의 할아버지다. 김 씨는 당시 집터 일부를 학교 운동장 부지로 싸게 내어준 후 인문학당 본채를 지었다.
인문학당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동안 주민 인문 활동 750건을 지원하고, 28개 인문 프로그램을 232차례 운영했다. 해당 기간 동안 1만5000명이 인문학당 공간을 대여했고 4640명이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광주 동구는 호남 1번지였던 역사와 문화 정체성 등을 반영한 도시브랜드로 인문도시를 추구하고 있다. 인문학당은 인문도시 핵심 거점 중 한 곳이다.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소외와 단절이 없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따뜻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인문학을 통해 사람이 문화의 중심이 되는 인문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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