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덮친 ‘온라인 도박 팬데믹(대유행)’의 발단은 한 유튜브 채널이었다. 평범한 고3이었던 최승현(가명·18) 군은 “클릭 몇 번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영상에 혹해 ‘바카라’에 손을 댔다.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수천만 원을 쏟아부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는 동급생 7명을 도박의 세계로 끌어들인 이 학교 ‘슈퍼 전파자’가 됐다.
동아일보 사건팀이 3개월간 취재한 도박 청소년 중에는 최 군처럼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도박에 흥미를 느꼈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도박 사이트 주소와 이용법 등을 알게 됐다”고 했다. 난립하는 유튜브 도박 영상이 10대 청소년들을 온라인 도박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팀이 살펴본 결과 유튜브와 SNS에 ‘바카라’ 등을 검색하면 “하루 수익 400만 원 찍을 수 있다” 등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었다. 10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유튜브 채널들 역시 바카라를 소재로 한 ‘웹드라마’를 제작했다. 도박 사이트 홍보팀의 일상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일부 영상은 도박 사이트 제조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자녀가 유튜브를 보고 도박을 시작했다는 학부모는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도박 관련 영상이 처음부터 자동으로 뜨는데 아이들이 안 보는 게 더 이상할 정도”라고 한탄했다.
이 같은 도박 유튜브 채널들에 대해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불법적인 영상은 자체적으로 삭제할 수는 있지만, 영상들이 많아 실시간 모니터링과 조치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도박 관련 유튜브 영상들을 삭제할 명확한 근거와 기준조차 모호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도박 청소년이 매년 급증하자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도박 사이트 폐쇄, 이용 계좌 동결 등 각종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후 대책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처음 접하게 되는 콘텐츠를 사전에 막는 것이다. 도박을 소재로 삼는 무분별한 유튜브 영상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없다면 청소년 사이에서 번지는 도박 팬데믹은 막을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