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물품보관함 부품 교체 사업 중 불거진 비리 정황을 담은 감사실의 보고서 초안을 바꾸도록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3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실은 지난해 8월 물품보관함에 사용되는 도어록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납품 업체와 공사 자회사인 서울도시철도ENG 소속 직원 간의 유착 정황을 포착했다. 앞서 지난해 2월부터 공사 신사업처는 보관함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도어록을 OTP(일회용 암호) 방식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사업은 시설물 유지 관리가 주 업무인 서울도시철도ENG가 계약 등을 담당했다.
감사실의 감사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입찰 과정에서 견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었다. 입찰에 참여한 H업체가 다른 업체들의 견적서까지 임의로 작성했던 것.
H업체 견적서의 도어록 납품가는 개당 23만 원, 다른 업체들은 개당 25만~28만 원이 적혀 있었지만 해당 업체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3월 H업체가 낙찰받아 공사 예산 4억3250만 원이 투입됐다.
그런데 감사실 조사 결과 해당 도어록은 실제로는 개당 약 9만 원이면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경우 필요 예산은 총 1억8600만 원이어서 절반 남짓으로 줄어든다.
감사실은 서울도시철도ENG가 H업체에 도어록 유지 보수 및 특허 비용으로 향후 5년간 7억65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계획을 준비했던 사실도 찾아냈다. 서울도시철도ENG 소속 팀장 2명은 해당 업체의 도어록 OTP 기술 특허 ‘발명자’로 등록돼 있는 상황이었다.
감사실은 납품 과정에 유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감사보고서 초안에서 이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중징계에 처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사 측에서 ‘견적서 조작이라는 단어를 빼라’ ‘고발 부분은 삭제하라’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감사실은 지난해 10월 최종 감사보고서에서 이 부분들을 삭제했다. 서울도시철도ENG는 11월 문제의 두 팀장을 각각 견책, 경고 등으로 경징계하는 데 그쳤다.
이후 의아한 인사 조치도 이어졌다. ‘감사 담당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3년 이상 근속을 보장한다’는 규정에도 이 건을 감사한 직원을 2년 만에 다른 부서로 발령 냈다. 비리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직원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이후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갔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초안을 검토한 결과 미흡한 부분이 있어 보완하는 통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라며 “3급 승진자는 현장 업무를 우선 담당하도록 하는데 해당 직원이 2022년 승진 이후 현장 근무 경험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발령을 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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