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묶인 대학등록금… 교수도 못버티고 해외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8일 03시 00분


성장 멈춘 한국의 대학들
첨단학과 초봉, 기업 절반도 안돼
시설 투자 등 못해 경쟁력 뒷걸음
교육부 압박에 2학기도 못 올려


‘○○대학교에서 이차전지 분야 전임교수를 초빙합니다.’

지방의 한 대학은 이달 초까지 2주간 첨단 분야 교수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육과 연구 경력 심사, 주제 발표, 면접 등을 거쳐 다음 달 1일자로 교수를 임용해 당장 2학기 수업과 산학협력 지원 등을 맡기려 했지만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해당 대학의 총장은 “다시 공고해야 하지만 지원자가 없을 것 같다”며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에서 제시할 수 있는 교수 연봉 자체가 적다”고 토로했다.

7일 교육계에 따르면 각 대학들이 재정난으로 교수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의 첨단 분야 전공 교수의 초봉은 80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 대학의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등 관련 산업을 다루는 기업에 취업하면 연봉 2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는 인재들이다 보니 교수직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총장도 “급여 인상이 안 되는 대학의 교수로 생활하다간 서울에서 집도 사기 어렵다”며 “어렵게 모셔와도 1, 2년 열심히 하다 해외 대학으로 간다”고 말했다.

모든 물가가 오르는 동안 대학 등록금은 2009년 정부의 규제에 묶여 16년째 동결된 상태다.

특히 재정의 대다수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립대의 경우 전기료,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 등의 지출 비용이 커지다 보니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못 해 교육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낮은 등록금은 해외 유명 대학과의 학생 교류에도 발목을 잡는다. 한 대학 관계자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국내 학생들이 미국 대학으로 학부 교환학생 가는 수가 반의 반 토막”이라며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2, 3배 높다 보니 한국과의 학생 교류를 꺼린다”고 했다.

대학들은 “교육 경쟁력 하락을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올 2학기 등록금 인상을 기대했다. 지난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 총장들과 만난 비공개 간담회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엔 등록금 동결 규제를 풀어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뒤 이 부총리는 입장을 바꿨다. 민생이 어려운 시기라 등록금 자율화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대학은 2학기 등록금 인상을 위해 최근까지 등록금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교육부 눈치를 보느라 쉽지 않은 상태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총장은 “대학이 무한정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과 인상분을 협의할 텐데 내년에는 반드시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빗물 새는 강의실, 부족한 실습비… “등록금 동결로 학생 피해”


[16년째 묶인 대학등록금]
대학도 학생들도 ‘인상’에 공감… 한국 대학 등록금, 美주립대 20%
해외 석학 초빙 엄두도 못내고… 교환학생 프로그램 확대 걸림돌
대학들, 교육부 재정지원 눈치… “국가장학금과 연계 폐지해달라”

“미국 주립대만 해도 등록금이 연간 3만∼5만 달러(약 4126만∼6878만 원)에 달합니다. 한국은 연간 등록금이 1000만 원도 안 되잖아요. 미국 대학은 5만 달러의 등록금을 내는 학생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손해라고 생각합니다.”(서울 소재 한 대학의 총장)

서울의 주요 대학을 비롯한 국내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해외 대학들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체결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낮은 등록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려면 최대한 많은 해외 대학들과 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국내 대학의 등록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해외 대학들이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 총장은 “미국 대학에서 정한 인원보다 우리 학생 수요가 많으면 거기에 등록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한국 대학이 재정을 지원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대학 등록금 2009년부터 동결


국내 대학 등록금은 2009년부터 동결됐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대학들에 등록금 인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법적으로는 각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 단,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동결 혹은 인하한 대학에만 국가장학금Ⅱ유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각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압박해왔다.

물가상승률이 가팔라 올해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는 5.64%다. 등록금 인상분이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금보다 많지만 교육부로부터 각종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 방침을 거스르긴 어렵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매년 교육부에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국가장학금Ⅱ와의 연계를 폐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등록금이 동결된 동안 세상은 급변했다. 2009년의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100%로 설정했을 때 2023년은 132.8%였다. 14년간 물가가 33% 가까이 오르는 동안 등록금 고지서에 찍힌 금액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공무원 보수는 140.6% 증가해 전 직급에서 국립대 교직원 보수가 사립대보다 더 높다.

● 예산 부족에 “교수 채용에 한계”

실력을 갖춘 교수가 그 대학의 경쟁력인 만큼 대학은 누구나 좋은 인재를 데려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부족한 재원으로는 인재 영입에 한계가 있다. 꼭 첨단분야 등의 이공계가 아니더라도 경영학과 교수 채용 역시 쉽지 않다는 게 각 대학들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경영대 초임 교수 급여가 외국의 괜찮은 대학의 6분의 1 수준”이라며 “좋은 교수 모시려고 인터뷰까지 마쳐도 급여 때문에 안 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해외 유명 석학을 방학 때만이라도 데려와 학생들에게 강의를 들을 기회를 주고 싶어도 쉽지 않다. 해외 대학에서 주는 것보다 턱도 없는 비용을 제시하는 게 부끄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수들의 학술 연구에 꼭 필요한 일부 학회지 구독을 끊는 대학도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 총장은 “교육의 질은 떨어지는데 대학은 등록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만 열심인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사립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높아 학생에게 해외, 창업,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의 투자가 어렵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매년 환경미화원 등의 인건비가 오르고 전기료도 2021년 대비 80% 올랐다”며 “쓸 것(고정 지출) 쓰면 예산이 바닥이라 학생에게 예산 편성할 게 없다”고 했다. 학과별로 배분한 예산을 2학기에 회수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비수도권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예산 반납으로 학생들 실험실습비, 지원비가 부족해지겠지만 학교 재정이 너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설 노후도 심각하다. 지난달 폭우 때 서울의 한 대학에는 양동이 40개로 건물 곳곳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냈다. 석면 철거 공사도 문제다. 국립대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지만 사립대는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한 번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 때문에 제대로 한 대학이 많지 않다.

● 대학들 “등록금 현실화해야”

학교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한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는다. 등록금 동결로 인한 교육 환경 악화의 피해는 결국 학생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열린 각 대학의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회의록을 보면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학교 의견에 동의한다”는 분위기다. 한 대학 관계자는 “등록금 운용 적자 현황, 지출 현황, 유틸리티 비용 등을 보여주면 학생들이 대부분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수긍한다”며 “과거엔 학생회가 ‘내 임기 때는 절대 안 된다’고 완강했는데 이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등록금 인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학기 등록금 인상을 적극 검토했던 수도권의 한 대학 측은 “교육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부분 때문에 인상을 계획했으나 안 됐다”고 전했다. 올 초 등심위에서 ‘2학기부터 올린다’고 결정했던 지방의 한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학기 등록금도 동결됐다.

대학이 원하는 건 등록금 현실화다. 지방의 한 대학 총장은 “등심위도 통과해야 해 무턱대고 인상할 수 없고 학생에게 그 이상 돌려준다”며 “대학 등록금 인상 이슈를 놓고 유독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대학 운영을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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