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한식 뿌리 찾으려 한 조선 양반들이 남긴 폐해[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8일 14시 07분


고려시대 이전에는 그 지역의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여성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조선시대에는 지방이라도 쓸 줄 아는 그 동네의 남자나 양반이 제사를 지냈다. 동아일보 DB
고려시대 이전에는 그 지역의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여성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조선시대에는 지방이라도 쓸 줄 아는 그 동네의 남자나 양반이 제사를 지냈다. 동아일보 DB
우리 음식의 뿌리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우리 한식을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아 오고 직접 만들어 주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빼면 안 된다. 할머니가 말하는 우리 음식 이야기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여 자식을 키우고 집안을 어떻게 지켜 왔는가’가 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그러나 유교 정책을 펴온 조선시대부터는, 소위 양반이라고 칭하는 부류에 의해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는 못 배운 아낙네들의 이야기로 항상 무시당해 왔다. 그들은 우리 음식은 시골의 촌 아낙네가 먹는 음식이라 치고 양반들이 먹는 음식은 무언가 달라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음식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양반들이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자식을 굶기지 않고 집안을 지켜 나갈 것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즉, 우리 음식의 맛과 영양,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 전통 한식은 촌티나고 냄새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특히 공맹사상(孔孟思想)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또는 그렇지 못하느냐가 양반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 된 시절에 연경을 한 번이라도 갔다 온 사람들에게는 우리 음식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메이지유신을 거친 일본은 일본 음식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

이것이 양반들이 음식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그러나 우리 고유 음식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중국 음식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홍만선(洪萬選)은 중국요리책(제민요술·齊民要術, 거가필용·居家必用)을 기반으로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저술했고, 몇십 년 후 그의 후손인 유중림(柳重臨)이 우리 음식을 보강하여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를 출판했다. 아마 그들은 우리 민족의 식생활이 중국 음식을 먹는 것으로 식생활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요리책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노력은 일정 부분 영역에서 성공한다. 일상에서 서민들은 아무리 중국 음식을 먹어 보게 해도 집에 돌아와서는 김치를 찾고 국과 된장을 찾아 이들의 바람이 실패하지만 종가에서 양반들이 주도하는 제사와 시제, 서원에서 하는 행사나 궁궐에서 주도하는 의례나 종묘 행사에서는 이 양반들의 노력이 성공한다. 이들 궁중음식이나 종가음식과 같이 중국에 뿌리를 둔 음식은 우선 쉽게 쉬지 않고 모양이나 형식을 갖추는 데 유리하여 긴 행차나 밤을 지새워야 하는 제례나 의례 음식으로서는 자리를 잡아 간다. 이러한 연유로 고려시대 이전에는 그 지역의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여성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조선시대에는 지방이라도 쓸 줄 아는 그 동네의 남자나 양반이 제사를 지냈다. 맛있게 먹고 사는 음식이 아니라 드리는 형식에 맞는 음식이 그들에게 더 중요했다.

이러한 양반들의 시각은 광복 이후 고등 학문의 영역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고유 음식의 뿌리나 맛과 문화, 지리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고찰한 한식 인문학이 발달하기보다는 중국의 한자 기록에 우리 음식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남자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을 한자 해석에 도입하지 못하다 보니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결국 우리 음식의 역사를 왜곡시켰다. 대표적인 오류가 우리 음식은 궁중음식, 종가음식 그리고 서민음식으로 구성된다고 하는 것이다.

세계 모든 음식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서 특별한 기술이 들어와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농산물을 자연발생적으로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고 살아가느냐의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
#한식#한식의 뿌리#k푸드#권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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