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31%, 청양고추 78% 껑충
“집중호우-무더위에 생육 부진”… 金사과 이어 폭염에 채소값 폭등
“식자재값 오르는데 손님은 줄어”… 외식업 경기 코로나 전 침체국면
주부 송모 씨(34)는 밥상에 늘 올리던 오이무침을 올여름엔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 크게 뛴 오이 가격이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는 “5개에 2900원이던 오이가 3개에 4900원까지 올라 최근에는 오이를 거의 사 먹지 않고 있다”며 “상추나 다른 채소 값도 많이 올라 채소 반찬은 예전보다 적게 만들고 장을 보는 횟수 자체도 줄이고 있다”고 했다.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상기후로 올봄에는 ‘금(金)사과’가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린 데 이어 여름에는 채소 값이 들썩이며 서민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1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다다기오이 10개의 소매가격은 1만3269원으로 조사됐다. 1년 전(8805원)과 비교하면 1.5배 비싸다. 같은 기간 애호박 1개의 가격은 1598원에서 2094원으로 31.0% 뛰었고, 청양고추 100g 가격도 864원에서 1540원으로 78.2% 상승했다. 열무와 배추 가격 역시 각각 6.8%, 5.0% 올랐다.
채소 가격이 이처럼 치솟고 있는 건 장마철 집중호우에 이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생육이 부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날씨가 요동친 최근 한 달 동안 채소 값 오름세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오이 가격은 지난달 9일만 해도 9911원으로 1만 원이 안 됐는데, 한 달 새 가파르게 뛰었다. 애호박 가격도 지난달 9일 1156원에서 점차 오르더니 이달 들어서는 2000원을 넘어섰다.
채소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8월 농업 관측에서 오이와 애호박의 출하량이 1년 전보다 각각 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잦은 비로 열매가 물러지는 등 생육이 부진해진 데다 해충 피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배추, 무 등 다른 채소도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히트플레이션은 가계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의 재료 값 부담 역시 키우고 있다. 개인 치킨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58)는 최근 골뱅이무침에서 배추를 뺐다. 손바닥만 한 알배기배추 가격이 2000원대에서 4500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재료 값은 끝없이 오르는데 안 그래도 줄어드는 손님들의 발길이 더 끊길까 봐 음식 가격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외식업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aT에 따르면 2분기(4∼6월)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75.60으로 1분기(1∼3월)보다 3.68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1년 새 매출이 감소한 업체가 증가한 업체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 보고서는 “외식업 경기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의 침체 국면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폭염, 태풍 등 날씨 변수가 남아 있어 농산물 가격 불안이 여전하다”며 “농산물 가격 변동 폭이 커지면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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