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사검사가 말하는 ‘명문대생 마약동아리’의 모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3일 03시 02분


“사회적 혜택 받는 명문대생들이 동아리라는 장을 이용해 장학금과 과외비로 은밀하게 마약을 사고, 텐프로를 불렀다. 4개월간 낮에는 공판을 마치고 밤에 시간을 쪼개 수사했다.”

서울대 등 명문대생들로 구성된 마약 동아리 사건을 수사한 이영훈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 검사(35·변호사 시험 6회)가 7일 동아일보와 만나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이 검사는 현금으로 마약을 산 다른 회원들도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적발되는 대학생 마약사범들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명문대생 마약동아리 사건을 수사한 이영훈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 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수상한 송금 기록에서 마약 단서

이 검사가 연세대 졸업생회장 A 씨의 단순 별건을 맡은 공판부 검사였던 올 3월 초에는 A 씨가 일명 ‘깐부’로 불리는 마약 동아리 소속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이 검사는 A 씨 계좌에서 의아한 점들을 발견했다. 몇 주 간격으로 늦은 밤마다 대여섯 명이 20만~30만 원씩 A 씨에게 송금한 기록이 있었다. 단순히 대학생들이 밤에 술 마시고 ‘N빵’ 한 것으로 보기에는 금액이 컸다.

동아리 회원들과 유독 고소 고발전이 많았던 A 씨의 범죄 전력을 살펴보던 이 검사는 A 씨가 ‘깐부’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올 4월에는 압수수색을 통해 이 동아리가 대학생 집단 마약 복용의 장으로 활용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이 검사는 공판을 마친 시간마다 ‘자투리 야근’을 자청해 4개월간 수사에 몰두했다. 그 결과 마약 동아리 ‘깐부’의 실체가 드러났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명문대 학생들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마약을 공부하고, 장학금과 과외비, 아르바이트비를 마약 구매에 쓰고 있었다. 학생마다 금액은 달랐지만 대략 6개월에 수백 만 원씩을 쓴 것으로 보였다. 수중에 돈이 없는 학생들은 서로 돈을 빌려 마약을 샀다. A 씨는 동아리 회원에게 생일 선물로 마약을 주고 환심을 샀다. 이 검사는 “이들에게 마약은 선물이고 재화였다”고 했다.

이영훈 남부지검 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수사관들도 통상 업무가 아닌 일을 밤낮, 새벽 가리지 않고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얘는 동참할 듯” 동아리서도 선별

동아리 전체 회원은 수백 명 규모였지만, 이들 누구나 마약을 권유받은 것은 아니다. 단체채팅창도 참여 인원이 각각 다른 여러 개가 존재했다. 동아리 임원들의 대화방에는 “얘한텐 물어보면 (마약) 할 것 같지 않냐”, “얘는 할 듯”, “안 할 듯” 등의 대화 기록이 있었다.

임원들은 외모가 수려하고, 동아리 활동에 열심인 학생들, 언변이 좋은 학생들 위주로 ‘마약 대상자’를 골랐다. A 씨 역시 집안이 유복하고 인물이 좋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들이 주로 ‘마약 멤버’가 됐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 모든 대화 기록을 지우면 오히려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티가 난다고 생각해 마약 후 느낌 등을 올린 대화 기록은 놔두고 마약 투약, 구매 등 관련 내용만 삭제했다. 주기적으로 카톡방을 없애는 ‘방폭’도 치밀하게 했다.

적발된 대부분의 회원은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지만, 일부는 “‘몰래뽕’을 당했다”, “돈은 냈지만 약은 안 샀다”고 변명했다. 몰래뽕이란, 마약을 투약할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이 술 등에 몰래 마약을 넣었고 이를 모른 채 마셨다는 것이다.

이 검사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안 했다’는 식의 납득 불가 변명이었다”고 말했다.

이영훈 남부지검 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대학생들이 텐프로 불러 ‘파티드럭’

A 씨와 동아리 남성 회원들은 호텔에 일명 ‘텐프로’라고 불리는 접대부들을 불러 집단 성관계도 가졌다. 이땐 ‘파티드럭’이라 불리는 MDMA(‘엑스터시’라고 불리는 마약의 일종)를 주로 했다. 대화방에서 이들은 접대부들을 ‘가씨들’이라고 지칭했다. ‘아가씨들’의 줄임말이다. 대화방에서 성관계를 직접 묘사한 대화 기록은 삭제했지만 ‘가씨들’이란 수상한 호칭 탓에 덜미가 잡혔다.

검거된 마약 동아리 회원 중 단순 투약만 한 8명은 치료·재활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기소유예됐다. 이 검사는 “프로그램을 일부라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소유예 취소가 될 수 있다”며 “사회에 복귀할 마지막 인간적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적발된 대부분 회원은 반성의 뜻을 밝혔다. 자수한 회원이 다른 회원을 설득해 자수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구속기소 된 한 임원은 당초 마약 중독을 외면하다가 구속 후엔 “구속된 건 힘들지만 단약(약을 끊는) 계기가 된 건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도 수사 초기엔 “위법한 압수(수색)”라며 반발했지만 현재는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훈 남부지검 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이 검사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마약을 ‘잘 노는 애들이 하는 힙한 것’으로 인식하는 등 경각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추가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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