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야당 의원과 언론인 등의 통신이용자(가입자)정보를 조회해 논란이 일자 야권에서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도록 법 개정안을 발의한 가운데 법조계 일각에선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이용자정보까지 법원의 영장을 통해 허가받아야 한다면 초기 대응이 중요한 수사에서 범인 검거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통신이용자정보도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조회해야 한다”며 9일 이른바 ‘묻지 마 사찰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검찰은 통신수사를 통화내역이 포함된 통신사실확인자료와 가입자의 성명 및 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된 통신이용자정보로 분류한다. 이중 통신이용자정보는 통신사실확인자료와 달리 법원의 허가 없이도 수사기관의 필요에 따라 제공받을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통신이용자정보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임의수사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통신이용자정보를 통해 제공되는 전화번호와 성명, 생년월일 및 주소 등은 사회생활을 통해 노출되는 정보인 만큼 그 자체로 민감한 정보는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검찰은 해당 법안이 발의되자 헌재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으며, 추가 영장 없이 통신이용자정보만으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큰 다른 정보에 곧바로 접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안이 발의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의 불가피성을 들어 수사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범죄에 직접 이용된 휴대폰의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거나, 법원의 허가를 받아 취득한 통화내역에 나와 있는 번호의 가입자 정보를 조회하는 경우에 이루어진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 통화내역 및 수·발신 번호를 취득한 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를 거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과잉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가입자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선, 불가피하게 취득한 통화내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연락해 범죄와의 관련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범죄와 무관한 사람들까지 필요 이상의 과도한 수사를 받을 수 있어 인권침해 등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 강도·성폭력·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의 경우 법원의 영장 발부를 기다리다 보면 신속한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법원의 허가가 떨어진 이후에야 용의자 추적을 시작한다면 범인 검거의 적기를 놓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도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와 관련해 영장주의 도입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수사 공백 우려에 대한 언급이 나왔고, 해당 법안은 기간만료로 폐기되었다. 또 미국에선 ‘저장통신법’에 이용자정보 조회를 위해서는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검사가 직접 소환장을 발부해 조회가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도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조회가 ‘사찰 논란’으로 번지자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라 공수처가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법령에 의한 행위라 사찰이라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공수처는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했고 이것이 사찰 논란으로 불거졌다. 2022년 7월 헌재가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에 대한) 사후통지절차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사후 통지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번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논란은 이때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사후 통지되며 시작됐다. 올해 초 이 전 대표가 부산에서 피습 당했을 당시, 피습에 가담한 공범을 며칠 만에 잡는데도 통신이용자정보 조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부지에서 피습을 당했는데 피습범은 현장에서 검거되었고 공범은 5일만인 7일에 검거되었다.
한편 윤석열 정부 들어 통신이용자정보 조회가 증가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검 관계자는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 가까이 감소한 수치”라고 반박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통신이용자정보 제공 통계에 따르면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건수는 문재인 정권 당시보다 최대 약 80만 건 이상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입자 정보 조회는 2022년 130만 건, 2023년 147만 건으로 증가했지만, 2018년과 2019년엔 각각 211만 건, 197만 건 조회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시대가 변한만큼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조회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법조계 의견도 적지 않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내가 평소에 전화하는 상대방이 수사기관에서 언제든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사생활 침해 우려가 항상 있는 것”이라며 “섬세하게 설계된 영장 제도를 도입해 법원 판단을 받아 과도한 인권 침해를 막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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