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근처에는 일부러 주차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3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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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옥외 주차장. 전기차 충전기 옆에 에어컨 실외기와 화분이 놓여 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전기차 충전소가 지하에 있는 데다 주변에 소화기도 없으니 불안하죠.”

1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주민 김모 씨(27)는 “일부러 전기차 근처에는 주차를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 시설은 3대 있지만 소화기는 없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은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을 계기로 서울 일대 아파트 10곳을 둘러봤다. 그 결과 9곳은 전기차 화재에 대비한 소화 시설이 없었다. 기자가 찾아간 서대문구의 다른 아파트엔 전기차 충전기 바로 옆에 에어컨 실외기가 놓여 있었다. 주민 최모 씨(28)는 “실외기만 해도 뜨거운데 혹시 전기차 충전하다 불이 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여름철엔 실외기 화재도 많다보니 더욱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엔 전기차 충전시설 인근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놓여 있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쓰레기에 불이 옮겨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시설에 소화기 구비나 환경 정돈을 강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친환경차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시설 및 전용 주차구역 설치 규정은 있지만 화재 예방 및 대처 관련 규정은 없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단속 권한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 등에 지상 주차를 유도하는 공문 정도를 보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경각심 커지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관계자가 전기차 충전소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서초구는 구 내 전기차 충전소 점검을 포함한 화재 대응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법적 공백에 지자체들은 자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구 내 전기차 충전소 점검 등 화재 대응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12일 서초구 반포복개천 공영주차장에서 구의 전기차 충전소 점검을 동행하는 동안 전문가가 전압, 전류, 전기선, 충전기 단자, 누선 등 화재 위험 요인 5가지를 중심으로 충전소를 점검했다. 화재 위험 요인은 맨눈으로 식별할 수 없기에 계량기, 열화상 카메라 등 장비를 동원했다. 점검 업체 대표 김덕기 씨(66)는 “전기차 시설 주위엔 불이 붙을 수 있는 물건을 두지 말아야 하고, 소화기를 꼭 구비하는 것이 좋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관련 화재 예방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전시설 인근 적치물, 가연물 등은 모두 화재 확산에 기여하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며 “관리 의무를 지는 소방안전관리자들이 화재 위험 요소들을 인지하고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화재#소화기#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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