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6시경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붙었다. 화재는 주변 차량을 시작으로 아파트까지 옮겨 붙었다. 당시 화재로 아파트 전기와 수도 시설도 녹아내려 단전 단수가 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이재민이 됐다.
일부 피해 주민들은 주변 숙박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했지만, 대다수 주민은 청라 1,2동 주민센터와 대한적십자 헌혈의 집에서 마련한 임시 대피소에서 삼시세끼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버텨가고 있었다.
김도희 씨는 그런 이재민을 위해 지난 4일 자신의 순댓국집을 개방하고 무료식사를 제공했다. 단전 단수로 마음의 여유까지 없어진 이재민을 위해 김 씨는 자신의 휴일도 반납했다.
무료식사를 제공 하게 된 계기
김 씨는 사고 다음날인 2일 저녁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가게에는 한 가족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오늘 운동하고 오셨나 봐요.”
김 씨는 친근한 인사를 건냈지만, 이들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전날 전기차 화재로 단전 단수가 되면서 집에서는 선풍기도 못 틀고 엘리베이터도 작동이 안 돼 계단으로 내려와 땀이 맺혔던 것이다. 또 냉장고가 가동 안 돼 끼니도 주변 식당에서 때워야 했던 것이다.
김 씨는 화재로 인한 이재민이 이렇게 많을 줄 예상도 못했다. 그는 자신의 한마디가 너무 부끄러웠고 이재민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피해를 입은 이재민 가족들이 저희 식당에 와서 뼈다귀해장국과 순댓국을 먹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 씨의 가게는 서울에 본사를 둔 프랜차이즈 순댓국집이었고, 재료들을 본사로부터 공급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본사 대표에게 이재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한가지 계획을 제안했다. 식당 휴무일인 일요일에 주민센터 대피소에서 지내는 이재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식사 봉사계획이었다.
본사의 지원과 주변 사람들의 동참
“알겠습니다. 저희가 모든 재료들을 지원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최양국 대표는 김 씨의 계획안을 전격 지지하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김 씨는 “만약 최 대표님의 지원 약속이 없었다면 무료 식사 제공을 위한 재료들을 따로 구매했어야 했다”며 “그럴 경우 봉사 인원과 경제적 부담이 증가해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지원 약속을 받자마자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안내문은 그의 친구가 만들어줬다고 한다. 이외에도 친구 2명과 휴일을 반납한 직원 1명이 봉사 당일 서빙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김 씨는 두 친구들에게 식사 서빙에 대한 방법을 철저히 교육했다. 그는 “이재민 분들에게는 평소와 같은 자세로 식사를 제공하게 했다”며 “성의 없는 자세를 보이면 무료 식사를 제공받는 이재민들이 위화감과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어 봉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예상보다 많은 이재민들의 방문
김 씨는 봉사 당일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에 봉사를 기획한 이유는 평일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일 점심, 저녁 시간은 일반인들이 식사하고 돈을 낸다. 그때 이재민 분들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이런 계획들은 세부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고 대충할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대피소에 있던 이재민들은 김 씨의 가게로 몰려왔다. 김 씨는 “가게 정원이 50명인데 그날 점심식사 시간에 줄을 밖에까지 섰다”며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날 김 씨의 식당에서는 평일과 다르게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재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 시켜 즐거운 식사가 되게 하려는 김 씨의 시도였다.
180명의 이재민들은 3일 만에 편의점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순댓국을 한 그릇씩 먹으면서 이웃의 안부를 물었다. 단전, 단수로 인해 발생한 문제,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공유하자 안심된다는 표정이 나왔고 따뜻한 국물은 이들의 피곤함을 덜어줬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희열
김 씨는 “가게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에어컨을 풀로 가동해도 시원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땀을 흘리며 보람차게 서빙하는 게 좋았지만, 이재민분들이 땀을 흘리며 식사하는 게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김 씨는 “봉사하는 동안 이재민들로부터 ‘오랜만에 밥 다운 밥을 먹어본다’는 내용의 감사 인사를 받고 희열을 느꼈다”며 “비록 다음날 가게 문을 열었을 때 피로감과 몸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김 씨의 무료 식사제공은 온라인 ‘맘카페’와 이재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다. 바로 다음 날부터는 그의 선행을 알고 방문하는 손님이 늘었고, 주변에 있던 식당에서도 무료 식사 쿠폰을 나누어 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김 씨는 “무료 식사 릴레이 바람이 부는 것 같아 내심 기분도 좋았다”며 “같은 소상공인 사장님들을 더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를 따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단전 단수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수요일(7일)부터 주민센터에 자원봉사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거기서 대피소 분들 식사 제공해드리고 쓰레기 치우고 이런 일들을 주말까지 할 예정”이라고 했다.
봉사는 끝났지만
김 씨의 선행이 다음 날 기사를 통해 알려지자 시민들은 김 씨의 행동을 칭찬했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이 “이재민들이 순댓국집 사장보다 돈이 더 많을 텐데”, “돈 많은 사람들 식사제공 한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등의 비아냥거리는 반응을 보였고, 김 씨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피해 지역에 파견된 한 공무원이 일부 이재민의 비상식적인 모습을 비판한 글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비난 여론이 형성된 것에 대해 김 씨는 안타깝다고 했다.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공무원분에게 항의를 했을수도 있지만 청라 이재민들을 모두 싸잡아서 비난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김 씨는 식당에 온 대다수의 이재민들이 감사함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식사를 제공받은 이재민분들이 그냥 가기가 미안해서 캔 음료를 사 들고 왔다. 오시는 분마다 커피와 음료를 주셔서 나중에는 술 냉장고가 커피로 꽉 찼고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저녁 시간에 온 이재민분들에게 나눠드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재민들은 김 씨 일행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기 위해 자신이 먹은 그릇들을 주방 반납대까지 갔다놨다고 한다.
김 씨는 “몸과 마음이 조금은 피곤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또 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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