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더워진 바다에 위험 어종 급증… 작년엔 바다 1ha당 0.3마리에 불과
해수면 온도 오르자 개체수 늘어나… 강릉-경주 등 해변서 쏘임 피해 증가
제주서 9년만에 파란선문어 물림 사고… 따뜻한 바닷물 빠른 속도로 북상 중
“지역 병원, 해독제 등 대응책 마련해야”
《더워진 바다에 위험 어종 주의보
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 규모가 작년의 약 360배로 늘었다. 피서객과 어민들은 비상이 걸렸다. 맹독을 품은 바다뱀과 문어를 봤다는 신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전기가 흐르는 회초리로 맞은 느낌이었어요.”
대학생 이은희 씨(26)는 지난달 30일 강원 고성군의 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왼쪽 손등과 무릎, 발등을 해파리에게 쏘였다. 손과 발등이 심하게 부은 탓에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주사까지 맞았다. 이 씨는 “응급처치 방법을 몰라 더 심하게 상처가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약 2주가 지나서도 이 씨의 몸에선 붉은 반점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폭염을 피해 피서객들이 해수욕장으로 몰리면서 덩달아 해파리에게 쏘이는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오르고 아열대화되며 ‘독성을 가진 바다 생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해파리 출현율 4주 연속 증가
3일 오후 3시경 취재팀이 찾은 강원 강릉시의 한 해수욕장에선 안전요원 김모 씨(22)가 삽으로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잔해를 모래사장 한편에 묻고 있었다. 김 씨의 배에는 20cm 길이의 흉터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해파리에게 쏘여 응급실을 다녀왔다”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흉터가 남고 간지러워서 괴롭다”고 말했다.
이날 경북 경주시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김수경 씨(57)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몇 분 만에 쏘였다”며 “해파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일부 피서객은 전신 수영복으로 중무장을 한 채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날 강릉시 송정해변을 찾은 피서객 절반은 팔다리가 가려지는 긴 옷을 입었다.
전국 연안에 해파리 출현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해파리는 강한 독을 가진 노무라입깃해파리로, 직경 길이 1∼2m에 달한다. 한 번 쏘이면 발열, 근육 마비, 쇼크 증상을 유발한다. 2000년 이후 매년 여름철 동중국해 북부 해역을 거쳐 우리 연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의 ‘해파리 모니터링 주간 보고’ 자료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율은 14일 기준 56.5%를 기록했다. 출현율은 한 주간 어업인 모니터링 요원 응답자 292명 중 해파리를 관찰한 사람 수를 백분율화한 값이다. 즉 어업인 10명 중 5.7명이 이번 주 바다에서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4주 연속 증가한 수치다.
● 노무라입깃해파리 360배 급증
지난달 기준 제주와 남해 연안에서 출현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바다 1ha(1만 ㎡)당 108마리다. 가로세로 10m 면적마다 1마리가 넘게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0.3마리)의 약 360배다. 수과원에 따르면 이는 측정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다른 강독성 해파리인 유령해파리와 커튼원양해파리, 두빛보름달해파리도 국내 바다에서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
해파리 쏘임 사고도 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수과원 조사 결과, 올 6월 전국 해수욕장 개장 이후 이달 5일까지 접수된 해파리 쏘임 사고는 총 2989건이다. 폭우 등으로 관광객이 줄어든 2023년(753건)을 제외하면 2021년 2434건, 2022년 2694건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해파리 급증이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열대성 어종인 해파리가 늘어난 건 우리나라 인근 해수면 온도뿐만 아니라 전체 바다 온도가 올라간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며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산성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해양 생태계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민호 해양생태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 동해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과원의 동해 표층 수온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따뜻한 바닷물이 우리나라 남해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10년간 연평균 2.09km였다. 하지만 2020년대에는 10년간 북상하는 속도가 연평균 4.95km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바다가 빠르게 더워지면 해파리가 급증하고 생태계도 바뀐다. 어민들도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17년차 어부 김명호 씨(59)는 “해파리 때문에 물고기도 잘 안 잡히거나 많이 죽어 수입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수온이 계속 높아진다면 폐사하는 물고기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맹독 바다뱀-문어도 출현… 9년 만에 물림 사고
수과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표면층 온도는 2020년대 평균 18.2도다. 2070년에 20도를 넘긴 뒤 2090년대에는 21.7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연중 내내 20도를 넘기면 ‘열대 바다’로 분류된다.
올해 제주에선 9년 만에 ‘파란선문어’에게 물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말 50대 여성이 통발에서 어획물을 꺼내던 중 파란색 고리 무늬가 선명한 문어에게 쏘였다. 여성은 손이 퉁퉁 붓자 인근 병원을 찾아 진통제 등을 처방 받았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2015년에는 제주의 한 해수욕장 갯바위에서 고둥을 잡던 30대 관광객이 이 문어에게 손가락을 물려 열흘 만에 겨우 회복했다.
파란고리문어속에 속하는 파란선문어의 독은, 청산가리보다 10배 강한 복어 독(테트로도톡신 성분)보다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과원 집계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파란선문어는 총 34건이다. 고준철 수과원 아열대수산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해안에 파란선문어가 정착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단순 유입을 넘어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맹독 바다뱀도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2015년 넓은띠큰바다뱀이 제주 서귀포 연안에서 처음 포획된 뒤 현재까지 32건의 바다뱀 포획 및 발견 신고가 접수됐다. 대다수는 넓은띠바다뱀이며, 좁은띠바다뱀(2건)과 바다뱀(4건) 신고도 있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은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 일본 아열대 해역에서 독성이 강한 바다뱀이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재 동아시아권 해역에서 보고된 바다뱀은 총 13종이다.
강독성인 노무라입깃해파리보다 독성이 더 강한 ‘맹독성 해파리’들이 국내 연안에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양 동물 중 가장 치명적인 독을 지녀 ‘바다 말벌’이란 별명이 붙은 ‘호주 상자해파리’는 호주, 필리핀 등 열대기후 바다에 주로 서식한다. 호주에서만 누적 6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보고됐다. 촉수 길이가 3m까지 뻗는 데 비해 몸집은 약 15cm로 작고 몸체가 투명해 미리 발견한 후 피하기가 어렵다.
●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씻은 뒤 병원으로 가야
해파리 등에게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부위를 충분히 씻어야 한다. 이후 온찜질(45도 내외)로 통증을 완화시킨다. 만약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 신경독 계열인 파란선문어와 바다뱀 등에게 물리면 119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맹독 생물 관련 물림·쏘임 사고가 많은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성 전문가(SPI)’가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회복된 이후에도 또 다른 SPI가 24시간 이내 해당 처방의 적절성을 이중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국내 독성학 분야의 한 전문가는 “맹독 관련 사고가 적어 해독에 필요한 혈청이 없거나 유통기한이 만료된 경우가 많다”며 “제주·남해안 등 맹독 해양생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 내 병원에서는 필수 해독제를 사전에 구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