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지역에서 10여 년간 양계장을 운영해온 A 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출하를 열흘 정도 앞두고 폭염으로 인해 키우던 닭 12만 마리 중 2만 마리가 폐사했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치면 대략 3000만 원가량 손해를 본 셈이다. A 씨는 “아침마다 죽은 닭을 치우면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그 심정은 말로 다 표현 못 한다”며 “태풍 이후에도 날이 덥다고 하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올여름 폭염이 지속되면서 두 달여간 가축이 100만 마리 가까이 폐사하고,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여기에 태풍 ‘종다리’ 등 기상 변수까지 더해지며 향후 밥상 물가가 더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두 달여간 가축 100만 마리 폐사
21일 행정안전부의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 6월 1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가축이 99만7000마리 폐사했다. 이 중 닭, 오리 등 가금류는 93만7000마리, 돼지는 6만 마리다. 닭과 돼지의 경우 땀샘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더위에 더 취약하다. 폭염에 양식 어류도 567만2000마리 폐사했다.
이에 닭, 돼지 등 축산물 물가도 폭염 전보다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20일 기준 육계 1kg당 소매 가격은 6089원으로, 폭염 전인 5월 20일 평균 소매 가격(5969원)보다 2%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삼겹살 1kg 소비자가격도 7% 올랐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가축 전염병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며 농가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폭우에 이어 찜통더위까지 이어지며 농산물 물가 불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21일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매 가격은 전월(5146원) 대비 34.6% 상승한 6926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9.7% 비싸고 평년보다는 29.7% 높은 수준이다. 시금치(100g) 소매 가격은 1년 전보다 48.9%, 파프리카(200g)는 29.7% 올랐다.
여기에 뜨겁고 습한 공기를 안고 오는 태풍 ‘종다리’까지 북상하며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종다리가 열대저압부로 약화되긴 했지만 고온 다습한 수증기 덩어리가 내륙에 머물면서 찜통더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상추 171%, 오이 99% 폭등
집중호우와 폭염 등의 영향으로 생산자물가도 한 달 만에 다시 반등했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19.56으로 전월 대비 0.3% 상승했다. 생산자물가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는 상승세를 보이다가 6월에 내림세로 돌아섰는데, 한 달 만에 다시 올랐다.
특히 농산물(1.5%)과 수산물(2.2%)을 포함한 농림수산물이 전월보다 1.6% 상승하며 생산자물가를 끌어올렸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상추(171.4%)와 오이(98.8%), 닭고기(3.8%) 등의 오름세가 컸다. 생산자물가는 1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만간 식탁 물가가 들썩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한은은 국내 물가 상승의 10%가량은 집중호우, 폭염 등 이상기후 탓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023년 이후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요인별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이상기후가 평균 약 10%를 차지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폐사한 닭과 돼지는 전체 사육 마릿수의 각각 0.37%, 0.54% 수준(20일 기준)으로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면서도 “혹시 모를 전염병 확산 가능성에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우와 폭염 등으로 가격이 오른 채소류도 비축 물량 방출과 조기 출하 지원 등을 통해 수급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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