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뒤집힌 에어매트’ 논란 확산
카메라-녹음기 같은 보조장비 분류… 5년간 예산의 0.5%, 72억 배정 그쳐
사고 현장 에어매트도 18년째 사용… 부천 참사 ‘침대가 불쏘시개’ 가능성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당시 투숙객 2명이 에어매트에 뛰어내린 뒤 숨지자 에어매트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에어매트는 소방법상 ‘구조장비’가 아니라 ‘보조장비’로 분류돼 관련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장비 전체 예산 중 보조장비 예산은 0.5%에 불과해 노후화와 부실 관리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보조장비’로 분류, 예산 부족
현행 소방장비관리법에 따르면 소방장비 중 에어매트는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 보조장비란 소방 업무 수행에 간접 또는 부수적으로 필요한 장비로 카메라와 녹음기, 지휘 텐트 등이 해당된다. 구조장비는 구조용 사다리, 유압장비, 총포류, 절단기 등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보조장비로 분류될 경우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가 소방 관련 예산 최근 5년 치(2020∼2024년)를 분석한 결과 소방장비 구매 분야 예산은 총 1조3800억 원이었다. 그중 에어매트 등 보조 장비 예산은 72억7000만 원(0.5%)에 불과했다. 반면 구조장비의 예산은 1171억3000만 원으로 훨씬 많았다.
● 노후화-관리 부실 원인으로 작용
이 예산은 장비의 구입뿐만 아니라 보수, 유지, 수리 등에 쓰인다. 예산이 부족하면 노후화와 관리 미비의 원인이 된다. 현재 소방이 쓰는 에어매트는 개당 400만∼500만 원 수준이다. 22일 부천시 화재 현장에서 사용된 에어매트는 2006년에 지급돼 사용 가능 연한(7년)을 훌쩍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까지만 쓸 수 있었던 셈. 소방당국은 “매년 관리를 받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당시 에어매트가 뒤집힌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노후화 비율은 20%가량”이라며 “매년 심사를 하고 구조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이 없어서 계속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부천 화재에서 에어매트가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점검에 나선 소방서들도 있다. 화재 다음 날(23일) 서울 서대문소방서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서울정보광장 온라인 사이트에 ‘공기안전매트 누기 및 내부 연결고리 파손’ 결재 문서를 올렸다. 공기 주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달 6일에는 서울 서초소방서가 에어매트 고장을 신고했고, 서울 송파소방서는 지난달 25일과 5월 31일 두 번 수리를 요청했다. 경기의 한 소방서 관계자는 “구조대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에어매트 수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예산은 적은데 값싼 장비가 아니다 보니 많이 찢어지지 않는 이상 수리도 잘 안 하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교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에어컨서 시작된 화재, 매트리스에서 커져
전문가들은 향후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예산 확보, 매트 교체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에어매트를 18년 동안 썼다는 것 자체가 소방의 예산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소방안전교부세를 소방이 관리하도록 해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부세는 현재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스프링클러가 미설치된 숙박 시설이었기 때문에 진압이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화재가 시작된 810호 객실의 에어컨에서 떨어진 불똥이 매트리스에 떨어져 불길이 커지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트리스에 불이 붙으며 실내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방재학회에 따르면 매트리스는 TV보다 불이 확산되는 속도가 490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고의당정협의회에선 구축 건물의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 설치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 방안이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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