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수사 과정에서 물건을 버리고 소유권을 부인했다면,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해당 물건을 유류물로 압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8년 경찰은 ‘A 씨가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다’는 제보를 받고 A 씨의 주소지, 신체, 차량들에 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수사에 나섰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A 씨는 돌연 컴퓨터 저장 장치 SSD 카드 2개를 신발주머니에 넣고 주거지인 아파트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차량 압수수색을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이 이 신발주머니를 발견했고, A 씨에게 “소유자가 맞냐”고 물었지만 A 씨는 부인했다. 이에 경찰은 SSD 카드를 유류물(버려진 물건)로 보고 영장 없이 압수했다.
문제는 해당 SSD 카드 내용이었다. SSD 카드에는 제보 내용 외에도 A 씨가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여성들의 나체나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등이 다수 담겨있었다. 이에 수사기관은 A 씨가 2017~2019년 여성 청소년들과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한 혐의, 성관계하는 장면을 불법촬영하고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의 쟁점은 이렇게 발견한 자료를 증거로 쓸 수 있는지였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중 새로운 범죄를 발견한 경우에는 압수수색을 중단하고 새로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압수수색과 저장매체 탐색 과정에서 피압수자의 참여권도 보장해야 한다.
1심은 증거 능력을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은 “SSD 카드를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불법촬영 및 음란물 제작·배포에 관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류물 압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SSD 카드는 유류물이므로 영장 발부 범죄와 무관한 내용을 압수했더라도 위법이 아니라는 취지다. 형사소송법 218조는 유류물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 없이 압수가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압수할 때 압수 대상이나 범위가 한정된다거나 참여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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