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고임금에… 대안 떠오른 ‘가사사용인 제도’ 논란
가정과 직접 계약 최저임금 미적용… “月40만~90만원대로 줄어” 주장속
검증-분쟁 해결 가정이 책임져야… 숙식비 등 포함땐 비용차 크지 않아
“바우처-세금 환급 등 정부 지원을”
다음 달 3일부터 서울 시내 가정에서 일을 시작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고임금’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가사사용인’ 제도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켜 이용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인데 불법 체류자 양산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7일 국회 세미나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관련해 “고비용을 해결하지 못하면 중산층 이하에는 그림의 떡”이라며 “수요자가 직접 계약하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배되는 일 없이 (더 낮은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올 6월 발표한 저출생 반전 대책에서 “민간 기관이 해외 가사사용인을 중개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가사사용인은 과외교사나 가사도우미처럼 개별 가정과 사적 계약을 맺고 일하는 근로자다. 국가의 관리·감독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중국동포(조선족), 고려인 등은 이미 가사사용인으로 취업해 일할 수 있다.
반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고용허가제(E-9) 대상이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할 경우 최저임금인 월 206만 원을 받게 된다. 이는 가정에서 내는 월 이용료 238만 원에서 4대 보험료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찬성하는 측에선 외국인에게 가사사용인 취업을 허용할 경우 홍콩, 싱가포르처럼 월 40만∼90만 원 수준으로 임금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도 올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 방식으로 도입한 외국인에게 최저임금만 줘도 대다수 가정에는 큰 부담”이라며 “개별 가정이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면 국내법과 ILO 협약과 무관하게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외국인 가사사용인 취업 허용이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정책이란 비판도 나온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신원 검증, 분쟁 해결 등에서 개별 가정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정부가 범죄 경력, 자격증 보유 등을 검증하는데 사적 계약은 민간 중개업체나 개별 가정이 책임져야 하다 보니 부담은 커지고 ‘돌봄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필리핀 가사관리사 월급 206만 원에서 숙소비 39만∼45만 원과 식비 등을 빼면 실제로 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100만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홍콩, 싱가포르의 경우 월급은 40만∼90만 원이지만 고용 가정에서 숙식, 보험료, 항공료 등을 부담하는 만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돌봄 인력만 차별하면 불법 체류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상당수는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가사사용인 제도를 활용하는 대신 정부 지원을 늘리는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김경선 한국항공대 석좌교수는 “돌봄 비용을 세금으로 100% 환급해 주거나 바우처로 지원할 경우 가정의 부담도 줄고 외국인 가사사용인 취업 허용의 부작용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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