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1차 실행안’ 발표에 교수들 “실효성 의문”…왜?

  • 뉴시스
  • 입력 2024년 8월 31일 08시 32분


"전공의 복귀없인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난망"
"40대중반 필수의료 교수 얼마나 버틸까 의문"
"초단기 미래인력 끊겼는데 수가인상 의미있나"
"일반병상 감축 입원치료 필요 환자 갈 곳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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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 없인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의료개혁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전날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으로 내년부터 4개 지역에서 8개 진료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 3년 미만 전문의 96명 대상 계약형 필수의사제 도입, 필수의료 수가 인상, 전공의 수련 내실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 진료 위주 개편 등을 발표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기피 요인으로 꼽혀온 만성적인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5000억 원을 투입해 두경부암·췌장암 등 1000개 중증 수술·마취 진료 행위 수가를 올리기로 했다. 또 오는 2027년까지 필수의료 분야 진료 3000종의 수가를 인상할 계획이다.

그러나 필수의료를 주로 담당해온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해 신규 전문의 배출이 요원해진 데다 전공의들이 주로 근무하던 상급종합병원의 수술 건수 자체가 전공의 사직 전의 50~6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여서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봐야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윤재 강남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사직 교수는 “대학병원은 적자를 모면할 정도의 수준으로만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면서 “전담 간호사(진료보조(PA)간호사)만으로는 전공의들이 있을 때처럼 수술과 시술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PA간호사 의료행위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간호법’의 국회 통과에 힘을 싣었지만 전공의 공백으로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들은 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입원·응급실 환자 등을 돌보며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해왔다.

이 교수는 “수술 후 환자 관리는 의대 교육을 받고 진료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고 행하는 것으로, 간호 인력에게 전적으로 맡기긴 힘들다”면서 “대학병원에서 시행되는 수술은 준종합병원이나 병원급에 비해 난이도가 높은 데다 수술 후 환자의 생리학적 변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심장, 뇌, 척수, 간·담도·췌장 같은 수술을 어떻게 맡기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교수들이 사태 장기화로 이미 모두 번아웃(소진) 상태”라면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 교수들의 평균 나이도 40대 중반인데 수년 후에도 계속 남아서 버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필수의료 수가 인상은)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인데, 문제는 외양간을 고치는 주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필수의료가 무너졌고 초단기 미래 인력까지 끊겼는데 (수가를)인상하는 것은 송아지들이 전부 폐사한 외양간에 돈을 뿌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의개특위가 전공의들의 연속 수련을 24시간, 주당 수련을 72시간으로 단축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당사자인 전공의 부재로 정책적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빅5’ 병원의 호흡기내과 A 교수는 “전공의들이 근무시간이나 돈 때문에 사직한 것이 아닌데 이런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전공의들은 필수의료를 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에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년도 의대 증원부터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 중 상급종합병원을 중환자 진료 위주로 개편하는 방안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부터 2027년까지 3년 동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진료 비중을 50%에서 70% 이상으로 높이고, 일반 병상은 최대 15%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B관계자는 “환자들이 중환자실을 나오게 되면 보통 일반 병상으로 옮겨져 경과를 관찰한 후 퇴원한다”면서 “기계적으로 일반 병상 규모를 줄이게 되면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준은 아니지만 입원 치료는 필요한 일부 환자들이 오히려 갈 곳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서울 소재 1500병상 이상은 사실상 ‘빅5’ 병원 정도인데, 이미 중증 환자 비율이 충분히 높은 상태에서 일방 병상 감축이 ‘상급종합병원 중환자 진료 위주 개편’에 얼마나 가시적인 효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라고 했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전문의 중심 병원’,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을 추진해봐야 전공의 복귀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결국 필수·지역의료, 대학병원 위기는 점차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전공의 없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당장 내년도 전문의 배출을 못할 뿐 아니라 지원율이 낮은 소아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외과 등 ‘바이탈’과 전공의 지원 급감으로 필수 진료과 명맥 단절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우려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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