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응급실 위기에 보건소까지 나서 “야간-주말 경증환자 맡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3일 03시 00분


[커지는 응급의료 위기]
‘이건희 주치의’ 이종철 강남구보건소장 “내년 긴급진료 클리닉 개설”
“보건소 로비-1층 진료실 활용 치료… 중증도 높다 판단땐 대형병원 이송”
美-호주 ‘긴급진료센터’ 벤치마킹… 의료계 “응급실 역할 분담 가능” 기대

이종철 서울 강남구보건소장은 2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형병원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몰리는 걸 막기 위해 평일 야간과 주말에 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긴급의료 클리닉을 개설할 것”이란 구상을 밝혔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전국 곳곳에서 대형병원 응급실이 운영에 차질을 빚자 서울 강남구보건소가 ‘긴급진료 클리닉’을 개설하고 야간과 주말에 경증 환자 치료를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호주 등에서 운영되는 ‘긴급진료센터(Urgent Care Center)’가 모델인데 대형병원 응급실 과부하를 줄여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할 수 있게 돕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 “환자 오면 경중 판단해 이송 또는 치료”

‘이건희 주치의’로 유명한 이종철 강남구보건소장은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건소 로비와 1층 진료실 공간을 활용해 ‘긴급진료 클리닉’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삼성의료원장을 지낸 의료계 원로로 퇴직 후 귀향해 창원보건소장을 지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내년 초 문을 여는 긴급진료 클리닉은 일반 병원이 문을 닫는 야간과 주말에 중증은 아니지만 응급처치가 필요한 중등증(경증과 중증 사이)과 경증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다. 야간과 주말에 대형병원 응급실로 중등증·경증 환자가 몰린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8월 넷째 주 기준으로 전국 병원 응급실을 찾은 중증 환자는 전체 내원 환자의 7.7%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등증 또는 경증 환자다. 이 때문에 응급의학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500여 명이 병원을 떠난 후 의료진 부족에 시달리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중증·응급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증 환자 등을 담당할 의료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소장은 “정부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환자가 직접 질환의 경중을 가리는 건 쉽지 않다”며 “긴급진료 클리닉에서 중증도를 판단하는 등 1차 진료를 하고 중증도가 높은 경우 인근 제휴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전역에 1만5000여 곳 운영

미국 긴급치료협회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약 1만5000개의 긴급진료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도 이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긴급진료센터’의 도입을 10여 년 전부터 제안했지만 제도화되지 않았다.


강남구보건소 긴급진료 클리닉은 일반 병원이 문을 닫는 평일 저녁(오후 6시∼오후 10시)과 주말 주간(오전 9시∼오후 4시)에 문을 열 예정이다. 또 삼성서울병원이나 강남구의사회에 운영을 위탁해 응급의학과와 내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 등 의료진 7명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 소장은 “전문 인력 채용으로 진료의 질을 높이면 믿고 공공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어날 것”이라며 “긴급진료 클리닉 모델이 성공하면 다른 보건소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일선 보건소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어느 정도 ‘의료의 질’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란 예상이 나온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긴급진료 클리닉이 응급의료 분야에서 1차 의료를 담당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응급실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셈”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건국대 충주병원이 1일부터 주말 및 야간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강원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은 2일부터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운영 중단 가능성이 거론됐던 아주대병원과 이대목동병원에 대해선 이날 “운영 중단이나 진료 제한 같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실 위기#보건소#긴급진료 클리닉#응급의료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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