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음란물은 주변 친구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군지를 먼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딥페이크는 절대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학교에서도 가해자 특정 및 증거 확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소년·학교폭력 분야 2급 공인전문검사(블루벨트) 자격을 보유한 신혜진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신 부장검사는 지난해 8월 서울대 법학박사 논문에서도 딥페이크를 활용한 사이버 성폭력이 새로운 학교폭력으로 문제라며 개선방안을 연구했다.
●학교에서 빠르게 조사하면 증거 확보 가능
최근 딥페이크 음란물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학교폭력 담당 장학사 등 교육 현장 관계자들이 신 부장검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딥페이크 음란물이 텔레그램 등에서 유포되는 만큼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운데 학교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신 부장검사는 “주변 학생들은 가해자가 누군지 아는 경우가 많으니 증거 확보를 위해 교사가 방관자와 목격자 조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휴대전화를 학생들에게 제출받아 열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부장검사에 따르면 영국은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준 학생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조사할 수 있다.
상당수 교사들은 학생 인권 침해를 이유로 진정 당할 것을 우려해 휴대전화 내역 확인 등의 조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수사와 별개로 최대한 빨리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교사도 노력해줘야 한다는 게 신 부장검사 설명이다. 또 학교는 가해자가 특정된다면 피해자와 교실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분리하고 피해자의 트라우마 회복에 신경 써야 한다.
딥페이크 음란물은 피해자도 주변인도 모두 용기를 내야 해결할 수 있다. 신 부장검사는 “증거 확보와 삭제 조치를 위해서도 피해자가 빨리 피해 사실을 알고 신고해야 한다”며 “형사 사건에 연루되는 게 조심스럽겠지만 두려움은 가해자가 느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학교와 가정에서는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과 배포가 학교폭력이고 성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교육해야 한다. 앞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처럼 익명성을 이용해 직접 신체에 접촉하지 않고도 타인의 성적 인격권을 침해하는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신 부장검사는 “메타버스 내에서의 아바타에 대한 성추행과 성적 괴롭힘도 연구했는데 피해자들은 자신이 실제로 당하는 것과 똑같은 수치심과 괴로움을 느낀다”며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어디까지 퍼져있을지 모르기에 피해자의 공포감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부 학부모는 자녀가 딥페이크 음란물을 유포한 사실을 알고 디지털 장의사에게 삭제를 의뢰하고 있다. 수사가 시작되거나 학교폭력 가담자가 될 것을 우려해서다. 특히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각 대학별 자율이지만, 2026학년도부터는 입시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필수로 반영돼 학부모들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증거인멸이다. 신 부장검사는 “아이가 대학에 못 갈까 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처신이겠지만, 잘못된 행위를 엄중하게 꾸짖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질 수 있게 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사이트 접속 차단, 휴대전화 압수 등 처분도 필요
법적으로 보완돼야 할 것도 많다. 사이버폭력의 유형이 점점 다양해지는 만큼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사이버폭력의 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 현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따돌림과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라고 돼 있는데 딥페이크 음란물 등의 사이버폭력의 여러 유형을 분석해 좀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도 사이버폭력에 적합한 것을 추가해야 한다. 현재는 서면사과, 교내 봉사,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이 있다. 신 부장검사는 “사이버폭력이 이뤄진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거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는 ‘반포(頒布 )등을 할 목적’이 있었다는 게 입증돼야만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음성을 촬영한 영상물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음란하게 편집 합성 가공한 범죄를 처벌할 수 있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단순히 제작과 소지한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기에 법정에서 “그냥 혼자 보고 즐기려고 만들었다”는 항변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신 부장검사는 “반포 목적 없이 제작, 소지만으로도 처벌하는 해외 동향을 보고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올해 발의한 형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 음란물을 공유할 의도가 없고 순전히 피해자에게 굴욕감과 고통을 주려고 만든 경우도 처벌된다. 지난해 8월부터 미국 루이지애나주가 시행 중인 법안에서는 미성년자를 묘사하는 딥페이크 음란물의 경우 만들거나 소지한 것만으로도 최소 5년, 최대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최근 정부도 딥페이크 음란물을 소지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가해자 상당수가 촉법소년이라 처벌을 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신 부장검사는 “14세 미만이라는 기준을 낮출 때는 된 것 같다”며 “촉법소년의 범죄 유형과 특성, 소년들의 발달 정도 등을 심층 연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이 국내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다며 비웃고 있는 만큼 플랫폼 규제 강화도 필수다. 신 부장검사는 “플랫폼은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데 독일과 영국 등 다른 국가는 플랫폼 규제를 강력하게 하고 있다”며 “불법 성착취물에 대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텔레그램과 같은 사적 대화 서비스에 대한 규제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미성년자 성착취물 사건을 수사하며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도 텔레그램이 답하지 않자 지난달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를 지난달 체포했다. 국내 경찰도 프랑스처럼 텔레그램에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를 적용하는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신 부장검사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영장 없이 피해자가 익명의 가해자 인적사항 정보를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ISP)로부터 신속히 받을 수 있는 법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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