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까지 9m 남겨두고 발각
소음 걱정에 기계 대신 삽-곡괭이
석유공사 前직원 등 9명 검거
도심 한복판 창고 건물에 물류센터 간판을 걸고 땅굴을 파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려던 일당 9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중 2명은 전직 한국석유공사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송유관 안전관리법 위반 혐의(절취시설 설치 미수)로 총책 A 씨(55) 등 6명을 구속하고, 가담 정도가 적은 단순 작업자 3명을 불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A 씨 등은 올해 2월 8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의 2층짜리 창고 건물을 빌린 뒤 6월 20일까지 땅굴을 파는 방식으로 송유관에 접근해 기름을 빼돌리려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작업 소리를 줄이기 위해 전동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삽과 곡괭이로만 땅굴을 팠다. 땅굴은 건물 1층에서 지하 4m 아래에 가로 75cm, 세로 90cm, 길이 16.8m 규모로 적발 당시 송유관에서 9m만 남겨둔 상태였다. 일당은 송유관까지 도달했지만 범행 자금줄이 말라 작업에 진척이 없자 땅굴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 9m 정도를 다시 메운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땅굴의 바로 위는 4차선 도로가 나 있고 하루 평균 차량 2만여 대가 통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판을 짠 총책 A 씨는 동종 전과로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석유 절취 시설 설치 기술자와 현장 관리책, 굴착 작업자, 운반책 등 공범을 불러 모았다. 이 가운데 기술자와 현장 관리책 2명은 과거 한국석유공사에서 일했던 직원이다.
역할 분담은 철저했다. 범행 장소 물색, 송유관 매설 지점 탐측, 석유 절취 시설 설계도면 작성, 석유 판매처 수배까지 할 일을 나눠 치밀하게 준비했다. 땅굴을 파는 창고에는 물류센터 간판을 걸어놔 위장했고, 땅굴로 이어지는 공간은 냉동 저장실로 속였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석유관리원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고,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근처 땅 밑을 스캔해 땅굴을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현장 주변에 초등학교, 중학교, 병원,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자칫 붕괴나 지반 침하 같은 2차 사고 위험이 컸다. 현재 땅굴은 모두 복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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