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 한 학생과 그 가족 신상이 올라왔다. 학생 얼굴 사진과 친구들이 함께 찍은 사진 4장도 함께였다. 입에 담기 어려운 외모 평가와 성희롱이 뒤따랐다. 2시간 뒤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불법 합성물 사진 6장이 올라왔다. 단체 사진에서 혼자만 나체인 합성물,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진에 학생 얼굴을 넣은 합성물 등이었다. 참여자들은 특정 자세를 취하는 합성물을 요청했다. “◯◯고 다른 사람은 없냐”며 제보를 받기도 했다. 이 채팅방 이름은 ‘◯◯고 김진아(가명)’, 참여자는 100명이 넘었다. 오직 학생 1명을 능욕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경찰 연락 오기 전엔 피해자인지도 몰라”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불법 합성물 성범죄가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중고교에 확산하면서 학교 현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피해 지역과 학교 목록까지 공유돼 파장이 일었다. 텔레그램 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긴급 요청한 불법 합성물을 삭제했다고 밝혔지만 지운 영상물은 25개에 불과하다. 주간동아가 만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이번 텔레그램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너무 크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주간동아가 9월 1~3일 온라인으로 접촉한 고교생 113명 중 21%는 지인 가운데 불법 합성물 피해자가 있다고 답했다. 경기 화성에 사는 고교생 A 양은 “딥페이크 사건 후 믿을 만한 지인 몇 명만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진을 볼 수 있게 설정해놓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지인 중 하나가 친구 사진을 텔레그램 방에 올리고 돈을 받았다”고 전했다. 고교생 B 군은 “친구가 불법 합성물을 만들다가 적발됐는데 학교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어 계속 등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교사와 학부모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20대 교사 주모 씨는 “학교에서 학생들도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누군가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사진을 찍어 불법 합성물을 제작할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학부모 C 씨는 “경찰 연락을 받기 전엔 자신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딥페이크 범죄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 혐의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중 10대의 비중은 2022년 61.2%에서 2023년 75.8%로 증가했다. 올해 1∼7월 기준으로는 73.6%로 집계됐다. 10대 피해자 수는 2021년 53명, 2022년 81명, 2023년 181명으로 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체 피해자에서 1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62%다.
디지털 기술 못 따라가는 학교 성교육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커지자 학교도 대응에 나섰다. 온오프라인 가정통신문을 보내 불법 합성물을 제작해 처벌받은 사례를 알리고 “온라인에 사진과 개인정보를 올리지 말라”는 예방 수칙을 전달했다. 서울 한 고교는 학생들에게 명단을 돌려 텔레그램 사용 여부를 적어 내게 했다. 일부 학교에선 2시간 남짓한 성교육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의 이 같은 불법 합성물 관련 조치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C 씨는 “학생들에게 SNS에 사진을 공개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창문을 넘어 도둑이 들어온 상황에서 ‘왜 창문을 잠가놓지 않았느냐’고 피해자를 탓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NS에 사진을 올리고 싶은 피해자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피해자가 자신의 삶에서 또 다른 피해를 입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고교생 D 양은 “인근 학교에서 명단을 돌려 텔레그램 사용 여부를 물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딥페이크 가해자를 찾지 못할 뿐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며 “친구들의 장난이나 괴롭힘으로 텔레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이 명단에 적힐 수도 있고, 불법 합성물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텔레그램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예방 교육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에 거주하는 학부모 장세영 씨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선 딥페이크 예방 교육이라며 평소에 보던 성폭력 예방 교육 영상을 틀어줬다고 해 답답했다”며 “불법 합성물을 제작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인지하고 있는지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에 사는 고교생 E 양은 “딥페이크 관련 교육이 학생들이 집중해서 보지 않는 동영상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성교육이 디지털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에서 사진을 내리라는 학교 안내 같은 방식의 성교육은 피해자를 조심시키는 관성을 따르고 있다”며 “남성, 여성 모두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대응은 과거 교육 방법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교 성교육은 10년 전에 멈춰 있다. 현 초중고교에서 시행하는 연간 15시간 성교육(성폭력 예방 교육 3시간 포함)은 2013년에 배정됐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과 교사용 지도서도 2015년 개정 이후 멈춰 있다. 신 교수는 “정보기술(IT) 발전에 맞춰 사용자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성교육 내용도 개발돼야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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