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지만
韓 자살 사망률 세계 최고 수준…증가세
청년층 “기성세대 과도한 관심·기대 부담”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어”
전문가 “예민한 얘기 대신 공감에 초점”
“명절에 친척 어른들을 만나는 생각만 하면 어린 왕자가 돼요. 다음 주에 뵐 생각을 하면 그 전주부터 긴장이 되고 숨이 가빠지는거죠.”
추석 명절을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2030 청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는 심지어 극단 선택을 생각해 본 적 있다고 8일 밝혔다.
오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로, 전 세계가 자살 문제 예방과 대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공동의 노력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제정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10일부터 일주일간을 ‘자살 예방 주간’으로 지정해 예방과 교육 및 홍보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자살 사망자 수가 총 6375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1% 늘어난 수치다. 2023년 전체 자살 사망자 수의 잠정치는 1만3770명에 달한다. 지난해 9월 기준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3.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1명)의 2배 이상이었다. 2위 리투아니아(20.3명)와는 3.3명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가운데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감 등이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는 명절을 전후해 극단 선택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도 털어놨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주모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쉬는 중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부터 ‘추석엔 어떡하지’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처럼 친척 어른들이 다음 주에 오신다고 하면 그 전주부터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친척들을 만났을 때 이번 학기엔 졸업하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그 말이 ‘이젠 취업해야지’라는 것으로 들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해졌다”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 거주하는 20대 취업 준비생 김모씨도 “명절에만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있다. 부모님만 지방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 가고, 나는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이나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돈은 얼마나 모았냐’부터 취업은 언제 할 건지, 학점은 몇인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부담스러운 동시에 내 대답이 친척 어른들을 실망하게 할 거라는 걱정도 든다. 그래서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청년 세대들의 스트레스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경험과 사회적 지지기반이 부족한 청년층이 좌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한국 청년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지 기반이나 네트워크가 취약한데, 취업과 결혼 등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많다”며 “연속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껴 우울감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임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취업, 결혼 등 청년층이 대면한 문제를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쉽게 질문할 수 있지만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이런 일을 처음 대면하는 것”이라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동시에 닥쳐서 취약한 상태에서 관련 얘기를 함부로 하는 것은 그 사람을 폭행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먼저 취업 등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을 만나서 힘을 얻는다. 취업이나 결혼 등 예민한 문제 대신 공감을 통해 힘을 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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