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안세영 발언’ 조사 중간발표
후원사와 수의계약시 ‘페이백’ 조항… 용품 추가로 받아 마음대로 사용
협회 임원은 규정 어긴 성공보수… “국제대회 개인출전-후원허용 방침”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후원사로부터 받은 억대의 경기 용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배드민턴협회는 연간 전체 후원금의 20%를 국가대표 선수단에 나눠 주기로 한 규정도 선수단에 알리지 않고 삭제했다. 배드민턴협회 임원들이 내부 규정을 어기고 후원사 유치에 따른 성공보수를 따로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일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체부는 파리 올림픽 기간에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이 협회와 대표팀 운영에 대해 비판한 것을 계기로 지난달 12일부터 조사를 벌여왔다. 최종 조사 결과는 이달 말 발표된다. 이날까지 문체부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48명 중 안세영을 포함해 22명의 의견을 들은 상태다.
이날 문체부 발표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 김택규 회장(사진)과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은 지난해 정부 예산이 투입된 배드민턴 승강제 리그와 유·청소년 클럽 리그의 경기 용품을 구입하면서 후원사와 수의계약했다. 이 과정에서 셔틀콕을 제외한 용품 구입액의 30%에 해당하는 1억5000만 원 상당 용품을 따로 받는 이른바 ‘페이백 계약’이 구두로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협회가 받은 셔틀콕과 라켓 등 용품이 전국의 10개 이상 지역 협회로 보내졌는데 3분의 1이 넘는 약 5280만 원어치 용품이 충남 지역에 배분됐다. 김 회장은 2021년 대한배드민턴협회 수장이 됐는데 그전까지 충남배드민턴협회장을 지냈다.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은 충남 태안군배드민턴협회장이다. 이런 이유로 문체부는 “김 회장의 횡령 및 배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후원사와 수의계약을 맺은 것도 보조금관리법 위반”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후원사로부터 1억4000만 원 상당의 용품을 받기로 서면 계약했는데 일부 용품은 목적에 맞지 않게 협회 대의원총회 기념품으로 사용됐다.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할 후원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문체부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는 후원사의 연간 전체 후원금 중 20%를 국제대회 성적 기준에 따라 선수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규정(국가대표 운영 지침)을 2021년 6월 삭제했다. 김 회장이 취임한 지 세 달 뒤 벌어진 일이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후원금 배분 규정이 없어진 사실도 이번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배드민턴협회 일부 임원은 후원사 유치에 따른 성공보수를 따로 챙겨 협회 정관과 행동강령을 위반했다. 2022년과 지난해 임원들이 챙긴 성공보수는 6800만 원이다.
문체부는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배드민턴협회 규정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는 국가대표 활동 기간이 5년 이상이고 남자는 28세, 여자는 27세 이상이어야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인 경기단체 중 이런 제한을 둔 곳은 배드민턴협회가 유일하다. 안세영은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게 된다면 좀 야박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다만 이 규정이 폐지되더라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출전은 대한체육회 승인을 따로 거쳐야 한다. 문체부는 또 선수촌 안팎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배드민턴협회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할 경우 자격정지 징계를 내릴 수 있게 한 규정도 즉각 폐지하라고 협회에 권고했다.
문체부는 선수들의 경기력과 직결되는 라켓, 신발도 후원사 제품만 쓸 수 있게 한 배드민턴협회 방침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미국, 일본, 프랑스는 경기력에 직결될 경우 후원사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유니폼에 개인 후원사 로고를 붙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평소 안세영은 선수도 개인 후원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었다.
문체부는 안세영이 “대표팀과 협회가 선수 부상을 안이하게 관리했다”고 지적한 데 대해선 다른 선수들과 협회 의견을 더 들어본 뒤 해결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후배가 선배의 빨래를 대신하는 등 선수단 내 악습으로 지적된 문제를 두고서는 “지금까지 조사로는 대표팀 내에서 일반화된 관행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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