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분수령]
의료공백 6개월… 표류하는 환자들
제주 조기출산 위험 산모, 병상 없어… 헬기 타고 440㎞ 떨어진 인천서 진료
권역센터 중증 환자 전원 17% 증가
정부 “응급의료기관 99% 정상 운영”… 보건노조 “65%가 제 기능 못해”
9일 오후 1시 28분경 제주소방안전본부에는 임신 25주 차인 30대 임신부가 조기 출산 위험으로 전원(轉院)이 필요하다는 신고가 제주대병원으로부터 접수됐다. 이 지역에선 제주대병원이 유일하게 신생아 중환자실을 운영하지만 병상 16개가 모두 찼고 응급의료 공백으로 의료진도 1명만 남은 상황이어서 대처가 어려웠다. 결국 임신부는 소방헬기로 충남 지역으로 이송된 뒤 119구급차를 타고 인천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진료를 받기 위해 약 440km를 이동한 것이다. 다행히 임신부는 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대형병원 곳곳에서 응급의료 공백이 확산되는 가운데 병원들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해 119구급대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가 의료공백 사태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반년 동안 진료 역량이 가장 높은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에서 치료가 어려워 다른 병원으로 보낸 중증환자도 지난해 대비 17%가량 늘었다.
● 전공의 이탈 전후 재이송 46% 증가
10일 국립중앙의료원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응급실 환자 내원 현황’에 따르면 올 2∼7월 지역의 최종 치료를 책임지는 권역센터 44곳에서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시킨 중증응급환자는 412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510명)보다 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의 병원 이탈 이후 응급의학과 전문의 혼자 당직 근무를 하는 권역센터가 늘면서 중증환자마저 수용하지 못할 때가 잦아진 것이다.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재이송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2월 19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190일 동안 119구급대가 한 번 이상 거부당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긴 ‘재이송’은 총 3071건이었다. 전공의 이탈 이전 190일 동안과 비교하면 46.3% 증가한 수치다. 2회 이상 재이송은 61건에서 114건으로 2배가량이 됐다.
병원들의 수용 거부 이유는 ‘전문의 부재’가 가장 많았다. 전문의가 없어 구급대 재이송이 이뤄진 경우는 1216건으로 전체의 40%에 달했다. 이전 190일 동안 같은 이유로 발생한 구급대 재이송은 883건이었다.
실제로 응급실 수용 거부와 재이송은 의료 현장에서 일상이 된 상태다. 8일에는 충북 청주시 어린이병원을 방문한 생후 4개월 남자아이가 탈장과 요로감염 증세를 보인다는 신고가 충북소방본부에 접수됐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충북대병원 등 인근 병원 10여 곳에선 소아 전문의 등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했다. 아이는 결국 신고 3시간여 만에 130km가량 떨어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 “99% 정상 운영” vs “65% 진료 제한”
중증환자가 대형병원까지 이송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도 늘었다. 중소병원 응급실인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숨진 중증응급환자는 지난해 6084명에서 올해는 6508명으로 약 7% 증가했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배후 진료의 한계 때문에 환자 수용이 어렵다 보니 중소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응급실 의료공백을 바라보는 정부와 현장의 온도 차는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일 기준 전체 응급의료기관 409곳 중 1곳이 운영을 중단했고 4곳은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또 나머지 404곳(98.8%)은 24시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응급실 불만 켜졌을 뿐 제 기능을 못 하는 곳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4∼9일 전국 65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42곳(64.6%)이 “응급실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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