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분수령/원로에게 해법을 묻다] 임태환 前의학한림원장
“의대 증원규모 350∼500명 적정… 전공의 빠진 협의체 갈등 키울수도
대통령 직접 사과로 실마리 풀고…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남은 의사들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지만 의료 현장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들도 더 이상 환자 곁을 떠나선 안 됩니다.”
임태환 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73)은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인터뷰를 갖고 “지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현 사태의 후유증은 최소 5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임 전 원장은 국내 보건의료 분야 최고 권위 석학 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한림원) 원장이던 2020년 의사 집단휴업(파업) 때 정부와 의사 양측을 설득하며 의정합의 도출에 기여했다.
● “적절한 증원 규모는 500명 이하”
임 전 원장은 “대학의 교육 역량 등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증원 규모는 350∼500명 수준인데 정부가 갑자기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해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며 “남은 의사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어 의료 시스템이 갑자기 붕괴하진 않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며 정신적·체력적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 전 원장은 2020년 의정합의 때 중재에 나섰던 경험을 돌이키며 “당시 보건복지부 장차관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난다. 정부에서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정부에서 의사들 의견을 수용해 국가시험(국시) 재응시 기회를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한 덕분에 지금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당시 다른 한편으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을 만나 ‘의사가 환자의 곁을 떠나는 건 파괴적 행동’이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고, 의사 국시를 거부하는 의대생에게도 ‘강을 건너버리면 해결이 안 된다. 이제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임 전 원장은 “이번 사태로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의대 교수 업무량이 크게 늘어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졌고 상당수가 의사로서의 자존심이 짓밟혀 연구 의욕을 잃었다”며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이 지금까지 누린 높은 진료 수준도 보장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실마리 풀어야”
임 전 원장은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 대신 정부와 의사가 일대일로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의사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구색 맞추기식으로 참여했다가 소수 의견만 내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던 경험이 많다”며 “신뢰가 없다 보니 지금 협의체에 참여하면 입시가 마무리될 때까지 논의를 끌면서 결국 또 이용만 당할 것이란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임 전 원장은 또 “전공의 참여 없이 협의체가 구성될 경우 결론이 나더라도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의사단체 내부에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감정의 골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전 원장은 사태 해결의 첫걸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무리한 증원은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이후 의료계가 중심이 돼 무너진 의료와 의학을 복원할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입시가 시작된 상황이긴 하지만 2000명 증원이란 엄청난 결정을 갑자기 발표해 놓고 조금도 규모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건 안 맞는 얘기”라고 했다.
임 전 원장은 마지막으로 젊은 의사들을 향해서도 “환자 없는 의사는 존재할 수 없다”며 “의료계를 떠나겠다거나 한국을 떠나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물꼬가 트이면 호응해 같이 사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태환 전 의학한림원장
△대전 출생(73) △서울대 의대 졸업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제3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제7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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