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정부, 14년 만에 다목적댐 건설 추진
정부 “극한 호우-가뭄 증가… 기후위기 대응댐 건설 시급”
연내 후보지 최대 10곳 속도… 양구-화순 등 “지역 소멸 가속화”
수해 겪은 연천-강진 등은 환영… 청양군, 지역 내에서 의견 갈려
전문가들 “지역 주민 동의 관건… 피해 보상법 개정 등 노력 필요”
지난달 27일 지천댐 건설을 위한 충남 청양군 주민설명회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설명회장 연단을 점거한 채 ‘댐 건설 반대’를 외쳤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마디 발언조차 못했다. 결국 설명회는 30여 분 만에 무산됐다.
지천댐은 정부가 금강권역인 지천에 신설을 계획 중인 저수용량 5900만 t의 다목적댐이다. 환경부는 올 7월 지천댐을 포함해 전국 14곳에 신규 댐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극한 호우와 최악의 가뭄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국가전략산업으로 인한 신규 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추가적인 물그릇 확보가 시급하다”며 댐 건설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목적댐 건설이 추진되는 건 14년 만이다.
하지만 강원 양구군 수입천댐, 충북 단양군 단양천댐 등 5곳은 주민 반대 등으로 설명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올해 안에 댐 후보지 최대 10곳 추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는 구상이다. 댐 건설에 찬성하거나 그동안 댐 건설을 요청해 온 곳도 적지 않은 만큼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댐 건설을 둘러싼 각 지역의 속내를 살펴봤다.
● “삶의 터전 사라져” vs “홍수 피해 막아야”
강원 양구군은 댐 건설 반대 여론이 거센 지역이다. 이곳에는 이번에 발표한 14개 댐 중 가장 큰 저수용량인 1억 t 규모의 수입천댐이 추진된다. 주민들은 9일 2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수입천댐 건설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댐 건설 백지화를 촉구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이날 “댐 건설은 청정 자연을 파괴하고 양구군의 소멸을 가속화시켜 군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양구군은 1944년 화천댐, 1973년 소양강댐 준공으로 상당수 마을이 수몰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전남 화순군 역시 동복천댐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장태수 화순군 사평면 주민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복천에 3번째 댐이 들어서는 것은 주민들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동복천을 중심으로 1971년 동복댐, 1991년 주암댐이 들어선 이후 안개 등이 자주 생기며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고 주민 호흡기 질환도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사평면 이장 등 80여 명이 구성한 대책위원회는 “도시민 식수원과 공장 용수 등을 늘리기 위해 농촌인 사평면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경기 연천군은 아미천댐 조성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연천군은 차탄천 상류인 연천읍 동막리 아미천에 4500만 t의 저수용량을 갖춘 다목적댐이 설치되면 수해 예방과 홍수 조절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주민설명회 참석자들도 대체로 댐 건설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동막2리 주민 이모 씨는 “수십 년간 상류 지역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하류 지역 마을과 농경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며 “댐이 있었다면 유량을 조절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덕현 연천군수도 “연천군민 대부분은 아미천댐 건설을 찬성하고 있다”며 “수변 공간을 활용한 관광사업으로 지역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남 강진군 역시 2017년부터 국토교통부에 댐 건설을 요청해 왔다. 지난해엔 환경부에 댐 건설을 재차 건의하는 등 공을 들여 왔다. 주남식 강진군 병영면 지로마을 이장은 “마을에서 10여 년간 원했던 사업이었던 만큼 주민 대부분이 댐 건설을 찬성하고 있다”며 “갈수기에 물 구하기가 어려워 지하수를 파곤 했는데 댐이 들어서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홈골제 일대에 190만 t 규모의 병영천댐이 건설되면 농업용수 확보는 물론이고 홍수 피해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경북 예천군도 총저수량 160만 t 규모의 용두천댐 건설을 반기고 있다. 예천군에선 지난해 7월 기록적인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예천군 효자면 도촌리의 한 주민은 “이미 오래전에 댐이 건설됐어야 했다”고 했다. 김학동 예천군수도 “지난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상류 지역에서 물을 조절할 수 있는 큰 물그릇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내에선 상반된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지역도 있다. 지난달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충남 청양군이 대표적이다. 최문갑 지천댐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댐을 건설한다고 홍수 피해를 막을 순 없고 각종 규제로 땅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성우 충남 청양군 대치면 구치리 이장은 “지천 하류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댐 건설에 찬성하고 있다”며 “하류 지역 수질 개선, 제방 붕괴 방지, 용수 확보를 위해 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환경부 “동의 지역부터 댐 건설 추진”
환경부는 우선 찬성하는 지역부터 댐 건설 절차를 밟아 나갈 방침이다. 김 장관은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역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곳부터 기본구상 등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산기천댐 등 지역에서 건의한 댐 8∼9곳 등은 계획대로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관건은 국가주도댐인 수입천댐 등 반발이 큰 지역”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역 반대가 심한 댐은 포기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대답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주민설명회가 진행 중인 만큼 마지막까지 반대 주민들을 설득해 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다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충남 청양군 지천에선 1991년, 1999년, 2012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댐 건설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댐 건설 추진을 위해선 지역 주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인 만큼 피해주민 보상법 개정 등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수몰 예상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중요하다”라며 “주민에게 수몰 토지만 보상해 줬던 과거와 달리 보상 항목을 확대해 실질적인 피해를 모두 포함시키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과거 국토부에서 하던 수자원 관리 업무를 환경부가 맡게 된 만큼 환경 파괴 우려를 최소화하는 친환경댐의 청사진을 보여 주는 등 주민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여러 당근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 장관은 “현재의 보상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댐이 들어서는) 지역에 재정적, 행정적으로 충분히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상 액수를 늘리는 협의를 재정 당국과 진행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환경부는 신설될 댐 대부분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설정되지 않을 것이란 점도 강조하고 있다. 취수시설이 없으면 댐이 조성되며 형성되는 호수 주변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규제 대상으로 묶이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14개 댐 중 취수시설이 예정된 댐은 동복천댐 1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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