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올해 대한민국에 부는 ‘셰익스피어 열풍’
400년간 재해석된 스테디셀러… 복합적 서사-입체적 캐릭터
시대 초월해 독자들 매료… “갈등 사회, 고전 필요성 커져”
출판계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영원한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400년 넘게 전 세계 독자와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살을 붙이면서 지금도 여러 번역본과 해석서들이 나오고 있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복합적인 서사와 입체적인 캐릭터가 현대 독자들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번역본, 리커버 책들 속속 출간
셰익스피어 공연 연출가이자 희곡 번역가인 이현우 순천향대 영미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여름 밤의 꿈’(동인)을 내놨다. 약 2년에 걸친 운문 번역작이다. 이 교수는 “그간 주로 산문으로 소개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원작에 가까운 운문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서는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우리 시 운율로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총 10권·민음사)을 펴냈다. 최 명예교수가 1993년 맥베스 번역을 시작한 지 약 30년 만으로, 운문 번역을 통해 원전의 리듬감과 읽는 맛을 최대한 살린 게 특징. 전집은 4대 비극을 비롯해 비극 10편, 소네트 154편을 담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1920년대 일본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이번 완간으로 100년간 이어진 일본식 번역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특정 주제를 뽑아낸 기획 저서도 출간되고 있다. ‘사랑은 맹목적이다(Love is blind)’, ‘러브 레터(love letter)’ 등 사랑 관련 주제로 문장과 단어를 엮은 신간 ‘셰익스피어, 사랑에 대하여’(세창미디어)가 대표적이다. 이성모 동인 출판사 대표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연구자, 학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출간 요청이 있다. 주로 4대 비극을 다룬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편”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책은 표지 디자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더스토리 출판사는 ‘1577년 홀린셰드의 연대기 초판본’이나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리어왕’ 등 옛 표지를 활용한 리커버 버전을 최근 출간했다.
● 복합적 인간상 살아 숨쉬는 매력
셰익스피어 작품이 수백 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서사와 캐릭터를 첫손에 꼽는다. 최종철 명예교수는 “‘햄릿’에서 주인공이 숙부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복수 대신 그를 살려주며,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클로디어스로 생각해 아무런 주저 없이 찔러 죽이는 모습이 공존한다”며 “인물들의 모순과 결함, 인간적 양면성이 다양하게 그려진 게 매력”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셰익스피어학회장인 김태원 서강대 영미학부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타자와의 만남’을 꼽았다. 김 교수는 “현대인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른 세계나 사회, 타자와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다”며 “‘맥베스’ ‘리어왕’ 등의 등장인물들이 타자와의 만남에서 겪는 슬픔, 번뇌, 고민, 행복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의 시대상이 셰익스피어 비극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현우 교수는 “삶이 복잡다단할수록 정답을 얻기 위해 통찰이 담긴 고전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에선 셰익스피어 작품 중 희극이 더 조명받는 편인데, 한국에서 유독 그의 비극이 인기를 끄는 건 한국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놓친 존재론적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짚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