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김 여사의 증권사 계좌 3개가 주가조작(시세조종)에 이용됐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1심 판결 때보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된 상황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향후 검찰의 김 여사 사건 처리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동아일보가 확보한 A4용지 345쪽 분량의 항소심 판결문에는 김 여사의 이름이 87회(개명 전 이름인 ‘김명신’ 1회 포함), 김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 씨가 33회 나온다. 지난해 2월 1심 판결문에선 김 여사가 37회 언급됐는데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최 씨는 1심 판결문에 27회 나온다.
항소심 판결문에 김 여사에 대한 언급이 대폭 증가한 것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 때문이다. 권 전 회장 측은 항소심 과정에서 2010년 10월 28일 김 여사가 대신증권 담당자와 통화한 녹취록 등을 제출했다. 권 전 회장 측은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계좌를 맡긴 것이거나 증권사 직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거래 계좌”라며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2월 1심 선고 후 “(김 여사가) 주가조작꾼에게 속아 일임 매매했다가 계좌를 회수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권 전 회장의 의사 관여하에 거래가 이뤄지고, 증권사 담당자는 지시에 따라 주문 제출만 했을 뿐”이라며 “해당 계좌는 권 전 회장 등의 의사에 따라 시세조종에 이용된 계좌”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다른 증권사 담당자와 통화할 때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등을 언급한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여사의 증권사 계좌 3개가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2010년 10월 21일 이후에 이용됐다고도 판단했다.
김건희 여사, 증권사에 “그분 전화왔죠?”… 2심, 통화 근거로 “권오수 前 도이치모터스 회장, 金계좌 운용”
‘도이치 사건’ 항소심 판결문 보니 조종세력 지시후 金계좌 매도 주문… 직원, 金여사에 “8만주 매도” 통화 2심, 녹취록 근거로 ‘시세조종’ 인정… 金 14억-모친 9억 상당 이익 추정
“김건희가 해당 계좌를 증권사 직원에게 거래를 일임시켜 뒀다거나 증권사 직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피고인 권오수 등의 의사로 운용되고 있음이 확인될 뿐….”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는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의 항소심 선고 과정에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유죄 선고를 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권 전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계좌가 자신의 주가조작에 활용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항소심 과정에서 펼쳤는데 이같이 반박하면서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 법원, “권오수 의사 아래 김건희 계좌 운용”
항소심 재판부는 권 전 회장과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9명에 대해 전원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들의 주가조작 실행 방식을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과정에서 총 35개의 계좌가 활용됐고, 이 가운데 김 여사의 계좌가 3개 이용됐다고 판단했다.
김 여사의 경우 자신의 계좌 등을 통해 40억 원가량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거래를 통해 13억9000여만 원의 이익을 본 것으로 한국거래소 분석 결과 조사됐다. 특히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는 도이치모터스의 상장 이전부터 비상장 주식을 보유한 초기 투자자로 권 전 회장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왔다는 점 등이 판결문에 명시돼 있다. 최 씨는 9억 원 상당의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에서 김 여사 명의의 계좌 3개가 시세조종에 이용됐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 과정에서 권 전 회장은 김 여사의 계좌가 시세조종에 활용되지 않았다며 당시 증권사 담당자와 김 여사가 통화한 녹취록을 항소심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했다. 권 전 회장은 녹취록 등을 근거로 “증권사 직원의 자체 판단 또는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시킨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오히려 녹취록의 맥락을 볼 때 “권 전 회장 등의 의사 관여하에 거래가 이뤄지고, 증권사 담당자는 그 지시에 따라 주문 제출만 했을 뿐”이라며 시세조종에 이용된 계좌라고 못 박았다. 대표적으로 2010년 11월 1일 주가조작 선수들끼리 “매도하라 하셈” 등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7초 만에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주식 8만 주의 매도 주문이 발생했고, 같은 날 증권사 담당자와 김 여사의 녹취록에 “방금 도이치모터스 8만 주 다 매도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재판부는 김 여사와 다른 증권사 직원 간 녹취록에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등의 대화 방식을 고려했을 때 권 전 회장의 관리하에 있는 계좌가 명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 여사의 미래에셋증권, 디에스증권 계좌도 주가조작에 동원됐다고 판결문에 담았다. 이들 계좌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기간에 활용된 계좌들이다.
● 김 여사의 ‘주가조작 사전 인지’ 관건 될 듯
1심과 달라진 항소심 판결문의 또 다른 내용은 이 사건의 전주(錢主)로 참여한 손모 씨에 대한 유죄 판단이다. 손 씨는 1심에서 주가조작 공모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이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하면서 이 혐의가 일부 인정돼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손 씨에게 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주된 근거로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내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손 씨도 있다”고 한 주가조작 선수 김모 씨의 진술 내용과 계좌 운용 방식 등을 고려할 때 손 씨가 주가조작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손 씨의 경우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매 규모가 70여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손 씨는 이 과정에서 오히려 1억900만 원가량을 손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와 모친 최 씨가 손 씨보다 오랜 기간 권 전 회장과 인연을 맺고, 투자를 이어 왔다는 점 등에서 김 여사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 모녀의 거래 규모는 손 씨보다 작지만 아직까지 김 여사에 대한 수사 기록 등이 법원에 넘어오지 않아 구체적인 규모나 방식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단순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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