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에어컨 설치기사 온열질환 사망 이어
해남선 배추밭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숨져
온열질환 산재, 진단서 만으로 결론 대다수
“사망 전후 사정 두루 살펴 산재 인정 필요”
무더운 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숨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온열질환 사망 산업재해 인정 기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8일 전남 해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2시4분께 해남군 북일면 한 배추밭에서 태국 출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A(54)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 조치를 받았으나 같은 날 오후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부검 결과 A씨의 직접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잠정 파악됐다.
그러나 A씨가 당일 이른 아침부터 점심까지 야외 배추밭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을 했던 만큼, 온열 질환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시 해남에는 42일째 폭염특보가 내려져 있었고 A씨가 발견된 오후 2시 기준 해남의 낮 최고기온은 30.6도, 지면 온도는 43.9도에 육박했다.
앞선 지난달 13일 오후 4시40분에는 에어컨 설치기사 B(27)씨가 장성군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숨졌다.
A씨는 사고 3시간 전부터 냉방 기구가 없는 실내에서 작업을 하다 온열질환을 앓은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숨진 이후 측정 체온은 40도를 넘었다.
이처럼 폭염 속 숨지는 노동자들의 사례가 연일 속출하고 있지만 온열질환 산재 인정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인정한 전국 온열질환 산재 사례는 31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광주·전남으로 좁히면 온열질환 산재는 5건에 그친다. 3건은 기온 31도 아래 상황에서 작업하다 인정된 사례이며 2건이 각각 34.3도, 34.6도의 기온에서 노동하다 온열질환 산재를 인정받았다.
무더위가 이어진 올해도 비슷한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질병청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집계된 온열질환 환자·사망자 수는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6일까지 누적 3599명이다. 온열질환 사상자 중 가장 많은 직업군은 단순노무직(849명·23.6%)으로 파악됐다. 당사자나 유족의 산재보험 신청 건수는 고작 67건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온열질환 사망 사고의 경우 산재 인정 기준이 복잡하거나 까다롭기 때문에 신청·인정 사례가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현행 온열질환 산재 인정 기준에는 ▲작업자 노동 시간 ▲노동 시간 내 최고 기온 ▲작업장 내 폭염 안전 수칙 준수 여부 ▲입원 전후 측정 체온을 비롯한 의료진 기록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온열질환 사망 산재는 실제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직접 사인이 최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실정이다.
특히 고온 상황에서의 심근경색은 대표적인 온열질환 증세 또는 사인에 해당지만 입원 전후 의료진이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할 경우 유족이 직접 나서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철갑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온열질환 의심 환자의 직접 사인이 밝혀지더라도 산업현장에서 숨졌을 경우에는 사망에 이른 환경과 조건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산재보험 입증 부담을 당사자·유족이 지고 있어 신청 건수가 현저히 적다. 보수적인 산재 인정 추세와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올해 상반기 지역에서 노동자 296명이 숨졌지만 이들 중 온열질환으로 숨진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온열질환은 산재 통계로 잡는데 보수적이다. 통계상으로도 온열질환은 따로 구분 없이 업무상 질병에 포함돼있을 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 당국은 통계를 세분화해 이에 따른 산업안전 대책을 내야한다. 예방 가이드라인만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공염불에 그친다”며 “나아가 온열질환에 따른 산재도 사업주에 대한 행정 규제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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