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부인과 88% 올해 분만 ‘0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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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수요 줄고, 소송 위험에 의사들도 기피… 분만 인프라 붕괴
분만 수가 미청구 전국 의원 1163곳… 전남선 6년째 한 곳도 청구 안 해
분만 가능 병원수 6년새 23% 줄어… “지역별 분만 병원 유지 위한 지원을”

경기 안성시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 여성(30)은 지난해 출산 한 달 전 휴직하고 친정으로 갔다. 이 여성은 “안성만 해도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가 없다 보니 친정인 광주의 한 대형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며 “임신 전까지는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이렇게 부족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또 “안성에 사는 다른 임신부들은 경기 평택시나 용인시, 충남 천안시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가서 아이를 낳더라”고 덧붙였다.

올해 1∼7월 전국 산부인과 의원 10곳 중 9곳은 분만을 1건도 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심화로 수요가 줄어든 데다 분만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는 낮고 소송 위험이 큰 탓에 갈수록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전국 분만 의료기관 6년 새 23% 감소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국 산부인과 의원 1316곳 중 분만 수가를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곳은 1163곳으로 88.4%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8년 82.2%, 2020년 84.3%, 2022년 86.5%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전남 지역 산부인과 의원 중에선 2019년 이후 올해 7월까지 분만 수가를 청구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광주에서도 2021년 이후 올해 7월까지 분만 수가를 청구한 곳이 없었다. 산부인과 의원 대부분이 부인과 진료만 하고 분만은 하지 않은 것이다. 이 지역의 산모 중 산과가 있는 대형병원이 집 근처에 없는 경우 분만을 위해 ‘원정 출산’을 가야 하는 상황이다.

분만 기능을 유지하는 대형병원의 수도 줄고 있다. 전국적으로 분만이 가능한 병원 수는 2018년 555곳에서 올해 425곳으로 6년 만에 23.4%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세종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분만 의료기관 수가 줄었다. 특히 대전은 2018년 29곳에서 올해 15곳으로 반 토막이 났다.

● “분만 의료기관 접근성 높여야”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은 저출산으로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분만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분만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본 의사들이 산과를 기피하는 경향도 확산되고 있다. 또 분만은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의료소송 위험도 커 의사 사이에서 대표적인 기피 분야로 꼽힌다.

분만 수가는 최근에 다소 오르긴 했지만 지난해까지 자연분만 1건당 78만 원 안팎에 불과했다. 올해부터 광역시는 55만 원, 도 지역은 110만 원을 더 주고 있지만 다른 의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오상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사무총장은 “분만을 하려면 병원에 수술실과 신생아실, 마취과 및 소아과 의사와 간호사 등 갖춰야 할 인력과 시설이 많은데 그에 비해 수가는 너무 낮다”며 “의사들이 굳이 힘들고 어려운 분만을 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선 산모들이 분만 가능한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장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내 산모들을 관리하면서 분만할 때 갈 수 있는 병원과 즉각 연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 의원이 지역별로 최소한이라도 유지될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분만#산부인과#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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