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1일은 치매 극복의 날
치매 노인 100만명에 육박
치매환자 돌보는 가족도↑
전문가 “국가적 지원 필요”
“일본, 온마을이 환자 돌봐”
‘2020년 10월24일, 시체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성금순(72)씨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치매환자인 어머니 이선웅(93)씨를 맡긴 요양원에서 보내온 일지 때문이었다. 일지에 어떻게 ‘시체놀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보호자에게 보내는 일지가 이 정도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성씨는 생각했다. 더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그날로 어머니를 직접 돌보기 시작했다.
뉴시스는 21일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치매환자를 홀로 돌보는 가족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족보호자 대부분은 꿈을 포기하고 하루 대부분 시간을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지난 10일 만난 성씨도 그랬다. ◆선교사 꿈 접고 4년째 친정어머니 돌보는 딸
성씨는 미국에서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7년간 해온 신학 공부를 접은 건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성씨는 “어머니 발이 참 고왔는데 왼발에 욕창 4개가 생겼다는 요양원의 연락을 받았다. 며칠 뒤에는 그 일지를 읽게 됐다”며 “2주 동안 매일 울었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다. 성씨는 한국에 남아 어머니를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주 6일 하루 4시간씩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성씨 혼자 어머니를 돌본다. 아침, 저녁, 새벽 하루 세 번씩 어머니 발을 만져 체온을 재고, 일주일에 한 번 손으로 직접 어머니의 변을 꺼낸다. 신장이 안 좋은 어머니에게 맞는 끼니와 간식도 챙긴다. 그렇게 4년을 보낸 성씨는 한 달 전 우울감을 겪었다.
“원래라면 지금 선교하고 있을 텐데 다 내려놓은 거잖아요. 살아있다는 건 뭔가를 하고 성취도 하고 그런 건데, 제 삶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에는 어머니가 틀니를 안 빼겠다며 성씨를 할퀴는 일이 있었다. 성씨는 “할퀴고 거부하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며 “치매안심센터에서 자조모임을 통해 만들기를 하고 다른 치매환자 보호자와 만나 고민도 나누고 혼자 묵상 기도를 하며 자신을 다독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겪어보니 치매환자를 돌보다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홀로 치매부모 돌보다 살해한 자식은 징역살이
치매가족을 홀로 돌보다 존속살해로 이어지는 일은 꾸준히 발생한다. A씨는 지난 2022년 10월 치매를 앓던 85세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날 오전 아버지는 A씨가 물건을 훔쳤다며 그를 쏘아붙였다. 조카가 선물한 노트북도 집어던졌다. 화가 난 A씨는 흉기로 아버지를 찔렀다. 범행 직후 A씨는 자수했고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합의1부는 “피해자인 아버지를 살해한 범행은 용납될 수 없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 범죄”라면서도 “평소 폭력적 성향을 보였고 어머니를 살해해 형사처벌을 받고 출소한 피해자와 30년 동안 살았다. 피고인이 결혼을 포기한 채 돈을 벌어 생활비를 부담하고 식사를 챙기는 등 부양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용변 실수한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도 있었다. B씨는 84세 어머니를 홀로 돌봤다. 어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 용변을 가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난해 1월 술에 취한 조씨는 어머니의 용변 실수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아들에게 맞은 어머니는 옷이 벗겨진 채로 방치돼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B씨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1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치매와 그로 인한 일상생활에서의 실수 및 용변 처리 등에 불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생명을 침해한 범죄에 대해 일말의 변명도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치매로 인한 용변 처리 실수 등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치매 노인 100만명 육박…보호자 실태 파악은 미진
치매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946만2269.5명 가운데 치매환자는 98만4600.98명이었다. 5년 전인 2018년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75만488명이었다. 약 25만명이 증가한 셈이다. 5년 뒤인 2028년에는 더 큰 폭으로 증가해 129만4575.16명에 달할 것으로 추계했다.
문제는 치매 노인이 100만명에 육박하는데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 파악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가족보호자 수, 그들의 정신질환 발병률 관련 조사가 치매환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실태 조사를 통해 치매환자 가족이 겪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속도가 더뎌 보호자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일 뉴시스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지난 5년간 집계된 치매환자 가족보호자 수, 치매환자를 돌보다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가족보호자 수 등을 물었지만 “미보유 자료”라는 답변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실태 파악 계획에 대해 “치매환자 및 가족(보호자) 대상으로 돌봄 부담 등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치매환자 보호자 수는 중앙치매센터 통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다. 중앙치매센터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치매센터에 등록된 치매환자 보호자 수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20만3720명(누적)이다. 이는 센터에 등록된 보호자만 집계된 것으로 전체 보호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자의 정신건강과 관련해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치매안심센터에서는 돌봄부담분석을 시행하며 우울증 선별 및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PHQ-9(우울증 선별도구)을 활용한 자가보고형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우울증에 대한 진단을 직접 내리지는 않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보호자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치매 전문가 “국가가 보호자 찾아 지원해야…마을 개념 정책도”
치매 전문의이자 성동구치매안심센터장인 김희진 한양대 신경과 교수는 지난 4일 뉴시스와 만나 치매환자 보호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보호자 대부분은 우울감 지수가 높아 자기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치매환자가 너무 많아 가족보호자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힘들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팔찌 만들기, 원예 프로그램과 찾아가는 서비스도 하는데 같은 사람만 참여한다”며 “숨은 보호자들을 찾아 많은 보호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마을이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본의 사례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일본 시즈오카현 서부에 있는 하마마쓰시의 평균 연령은 80대 이상”이라며 “치매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환자, 관련 질환을 앓지 않는 노인들이 같은 마을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치료와 돌봄의 경계 없이 지낸다”고 했다. 치매환자를 가족 개개인이 아닌 마을 전체가 보살피는 것이다.
또 “일본은 요양병원과 요양센터가 복합체다. 병원에서 치료가 되면 아급성 병원으로, 아급성 병원에서 일부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해결이 안 되면 요양원에서 재활하면서 또 일부는 집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치매환자가 요양병원에 평생 살지 않고 사회, 가정으로 복귀해 녹아들 수 있게 노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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