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車… 인도 다니면 과태료
폐지 줍는 노인 22% “수집중 다쳐”
50원 더 주는 고물상 가다 참변도
‘인도 통행안’ 회기만료로 폐기돼
최근 경기 고양시의 도로에서 60대 노인이 폐지 수집 손수레를 끌고 가다가 차에 치여 숨진 사건을 계기로 안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7월 기준 국내의 폐지 수집 노인은 1만4831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5명 중 1명꼴로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기 때문에 폐지 수집 노인들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선 차도로만 통행할 수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도중 부상을 경험한 노인은 전체의 22%였다. 교통사고를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6.3%였는데 그중 77.2%는 차량과의 사고였다. 손수레를 끌고 인도로 다니면 적발 시 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2일 서울 시내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과 동행해 봤다. 취재 내내 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1년째 빈 병 등을 줍는 김모 씨(70)는 차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인도에 바짝 붙어 다니다가 세 차례 넘어졌다. 김 씨는 “아는 언니는 리어카(손수레)를 끌고 다니다가 사고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고 전했다. 다른 주택가에서 만난 홀몸노인 김모 씨(80)는 차도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내내 주변 차량들이 옆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김 씨는 “박스를 주우러 간 사이 차가 내 리어카를 들이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폐지 수집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일한다. 한 달 평균 수입은 15만9000원이었다. 폐지를 줍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 노인의 84.1%는 “경제적 사유”라고 답했다. 앞서 20일 고양시에서 숨진 60대 여성도 폐지 값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아 먼 길을 가다가 변을 당했다. 주변 지인 등에 따르면 그의 주거지 10분 거리에 고물상이 있었지만 폐지 1kg당 50원을 더 주는 다른 고물상으로 40분 이상 거리를 걸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도로교통법의 예외 규칙 등을 마련해 교통사고 위험을 줄여야 된다고 지적한다. 제20대 국회에선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시켜 인도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리어카는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차를 따라갈 수 없는데 차도로 다니는 건 위험하다”며 “게다가 주로 새벽에 다니는 경우가 많아 운전자가 식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대체 일자리 및 보조금 등을 늘려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노인인력개발연구원은 “지자체 폐지 수집 노인 지원 조례를 제정 혹은 개정할 수 있도록 표준 조례안을 마련해 체계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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