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프면 어쩌나” 의료공백에 부모들 CPR 응급처치 수강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5일 03시 00분


‘응급실 뺑뺑이’ 계속돼 불안감
“응급처치법 직접 배워 대처해야”
수강요청 작년보다 3배 이상 늘어
“교육한다며 보험 파는 업체 주의”

2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응급처치가 필요합니다!”

24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초등학교 2층 도서실에 모인 학부모들에게 1급 응급구조사 출신 최연이 하나응급처치교육원 대표(31)가 외쳤다. 각종 응급처치법을 배우기 위해 모인 학부모 40여 명은 4인 1조로 119 신고법, 심폐소생술(CPR),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등을 실제 상황처럼 배웠다. 학부모 김소희 씨(41)는 “13세 아들이 다니던 병원에서 전공의 파업 때문에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며 “응급처치법이라도 내가 배워놔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학부모들도 의무 교육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40명이나 모였다”고 말했다.

● 의료 대란 우려에 “내가 직접 응급처치 하겠다”

의대 정원 증원에서 시작된 전공의 파업과 의료 대란, 의정 갈등이 일명 ‘응급실 뺑뺑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련 증상을 보인 두 살 여아가 응급실 병상을 못 찾아 진료가 1시간 늦어졌고 한 달째 의식불명에 빠졌다. 올해 비수도권 국립대병원 14곳의 응급실 병상 가동률은 36.4%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응급처치법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이날 진행된 응급처치법 교육은 지난달 말 지축초 학부모회가 먼저 관련 업체에 수업을 해달라고 요청해 이뤄지게 됐다. AED를 이날 처음 써 본 학부모들은 전원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패드는 가슴 어디에 어떻게 붙이는지를 차근차근 배웠다. “AED에서 나는 ‘숨소리’ 음성은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면서 인공호흡을 하라는 뜻입니다”라는 강사의 말에 학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에 참가한 학부모 이은희 씨(40)는 “10세 아들이 이번 추석 때 열이 40도까지 올랐었다”며 “하지만 병원에 전화해도 몇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병원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번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6세, 11세, 13세 등 세 딸을 둔 박지연 씨(41)는 “요즘은 병원은 진료 마비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응급실을 못 이용하는 병원 리스트를 학부모들끼리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비해 수강 요청 3배 이상 늘어

지축초 교육을 진행한 최 대표는 “지난해는 한 달에 2번 정도 학부모 교육이 있었는데 올해는 최소 5, 6번 이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안전교육 기관인 우리응급처치교육원 측은 “지난해엔 학부모 대상 교육이 2개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이미 진행한 것만 15개 이상”이라고 했다. 16년간 119 구급대원으로 근무한 뒤 지금은 응급처치를 가르치는 유동훈 생명응급처치교육원 대표(43)는 “보통 기관이나 기업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올해 들어 학부모들이 개인적으로 요청해 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의료계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상열 원광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는 치료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돼 꼭 익혀둬야 한다”라며 “응급실에 대한 개념과 이송 절차까지 배워둔다면 응급 상황 대처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틈타 교육에 보험 등을 끼워 파는 엉터리 사설업체도 생겨났다. 이들은 주로 ‘강의료는 무료’라고 홍보하면서 슬며시 보험 상품이나 약 구매를 유도해 주의가 당부된다.



#의료공백#심폐소생술#CPR 응급처치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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