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극복한 중장년층, 또 다른 고립가구 치유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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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모두의 친구’ 프로그램
고립 이겨낸 40∼60대 중장년층… 고립가구 돌보는 치유 활동가로
1인가구의 80% 고독사 위험군… 시, 내달 ‘고독대응 대책’ 발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주택가 공원에서 ‘치유 활동가’ 김병수 씨(왼쪽)가 지역 내 고립 당사자를 만나 상담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부터 고립 상황을 극복한 중장년층 시민이 지역사회 내 고립 가구를 발굴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하는 ‘모두의 친구’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막막하다’ ‘지루하다’ ‘짜증 난다’…. 지금 기분을 표현하자면 이래요.”

23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주택가. 공원 벤치에 앉은 윤모 씨(56)가 종이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종이카드 3장이 들려 있었다. 카드를 건네받은 치유 활동가 김병수 씨(62)가 “어떤 점이 막막하냐”라고 묻자, 윤 씨는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혼자 지내니 앞으로가 막막하고 걱정스럽다”며 “혼자 방에 있다 보면 지루하고 짜증도 난다”고 답했다.

● 고립 극복하고 치유 활동가로

이날 윤 씨를 찾아간 김 씨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모두의 친구’ 프로그램의 치유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는 고립 상황을 극복한 40∼60대 중장년층이 또 다른 고립 가구를 돕는 활동가로 일하는 이 프로그램을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역사회 내에서 관계망을 만들고 고립가구의 동주민센터·지역사회복지관 연계를 돕는 것이다.

김 씨와 윤 씨는 동네 형, 동생으로 10여 년간 알고 지냈지만 최근 김 씨가 치유 활동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부쩍 자주 만나고 있다. 이날도 김 씨가 윤 씨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쪽방에서 나온 윤 씨가 그를 맞았다. 혼자 살며 거의 집에서 나오지 않는 윤 씨는 김 씨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올 6월 ‘모두의 친구’ 활동을 위해 두 달간 8번의 역량강화 교육을 마친 김 씨는 교육에서 배운 대로 ‘감정 카드’를 활용해 윤 씨의 상태를 살폈다. 윤 씨가 “막막하고 지루하고 짜증 난다”는 감정을 표현하자 김 씨는 “너무 지루해하지 말고 간간이 이렇게 공원에 나와 한 바퀴 돌고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며 “혼자가 힘들면 언제든 전화하면 같이 가주겠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한때는 고시원에 살며 2년간 방 밖을 나서지 않았다. 젊은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게 되면서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폐소공포증을 갖게 돼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트럭 운전, 막노동 등을 하다 주변에 자신처럼 혼자 사는 고립가구가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치유 활동가 교육을 받게 됐다. 김 씨는 “‘모두의 친구’ 활동을 통해 스스로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고립 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 서울시, 고독 대응 대책 준비

김 씨를 비롯한 치유 활동가 17명은 11월까지 약 4개월간 지역 내 고립가구를 찾아 활동한다. 서울시는 상명대 부설 상명가족아동상담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치유 활동가가 고립가구 지원 중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심리 상담을 지원한다.

올 1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1인가구 10명 중 8명이 ‘고독사’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시내 1인 가구는 약 156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38%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올 7월 전국 최초로 돌봄고독정책관을 신설했고 10월 중 ‘고독 대응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상훈 서울시 복지실장은 “사회적 고립에 놓인 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립 극복#중장년층#고립가구#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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