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동안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한 배용원 전 검사장(56·사법연수원 27기)은 변호사와 검사의 차이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배 전 검사장은 “검사 시절에는 사건을 기록으로 먼저 보는데, 변호사는 찾아오는 사람부터 만난다”며 “첫 만남에 차이가 있다보니 당사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고 했다.
순천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배 전 검사장은 검찰 내에서도 중대재해·선거·지식재산 분야 전문가로 꼽혀왔다. 검사 시절 대검찰청 공안3과장과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및 공공수사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현재 검찰이 활용하는 선거사범 양형기준은 배 전 검사장이 대검 연구관으로 근무할 때 제작한 양형테이블을 토대로 선거 때마다 업데이트되고 있다. 선거법 책자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공직선거법 벌칙해설’ 역시 배 전 검사장의 손을 거쳤다. 대검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초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지식재산 범죄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시절에는 소장이력 추적, 전문가 안목 감정, 전문기관 과학감정 등을 거쳐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배 전 검사장은 검사 시절 겪었던 수많은 사건들 중 퇴임 직전까지 수사본부장을 역임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24일 오전 배 전 검사장을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배 전 검사장과의 일문일답.
―검사와 변호사의 차이점은? “사건을 접하게 되는 첫 만남에 차이가 있더라. 검사 때는 기록으로 사건을 먼저 접하는데 변호사는 찾아오는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된다. 첫 만남에 차이가 있으니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사건 당사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변호사가 되어보니 검사 시절 처리한 사건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인지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 현직에 있을 때 매사에 신중하고 경청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검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숱한 사건이 있었지만 퇴임 직전 청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수사본부장으로서 지휘했던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 사건’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중대재해 사건에 전문성이 있는 검사들을 파견받아 7개월간 동고동락했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검사 여러 명이 과로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다들 열심히 일했다. 수사를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해석과 적용이 단순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보다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중대재해법이 개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검사 시절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경험은 “2006년 대검 공안부 선거담당 연구관 시절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근무했는데, 검찰 최초로 선거사범 양형기준을 미국의 양형테이블(sentencing table)처럼 만들었다. 당시 제4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작했는데, 동료 연구관과 제3회 지방선거 1심 판결문을 전수조사해서 범죄유형과 양형인자를 일일이 분석했다. 사무실에서 밤새워 작업하고, 인근 목욕탕에서 씻고 다시 출근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범죄유형에 따른 양형인자를 쭉 분류했는데, 현재 검찰에서 사용되는 선거사건 양형기준의 토대가 됐다.”
―공직선거법 벌칙해설 작성에도 참여했다 “대검 연구관 시절 집필에 참여한 공직선거법 벌칙해설 제4 개정판은 본문만 800쪽에 가까운 명실공히 ‘선거법 책자의 바이블’이라고 평가할만 했다. 일선 검찰청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청, 대법원에 참고용으로 배포했다. 그 이후로도 벌칙해설서가 4년에 한 번 정도 개정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3차례 개정작업에 관여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법무심의관실에서도 두 번 근무했다 “2009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와 2015년 법무심의관을 역임한 것도 매우 보람된 기억이다. 법무심의관실은 ‘정부의 로펌’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곳이다. 법무부에 근무하면서 과태료 기본법인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정에 관여하는 등 수많은 법률의 제정과 개정에 관여한 것이 법률가로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식재산 수사를 위해 특별히 노력한 점이 있다면 “주로 공안 분야에 근무하다가 2016년 지식재산 전담부서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을 맡게 되면서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석사과정에 등록했다. 전문성을 갖춘 후배들의 사건을 더 정확하게 결재하기 위해서였다. 웬지 쑥스러워 후배들 모르게 다녔는데, 다시 학생이 되어 배우는 과정이 참 즐거웠고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부인(김빛내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에게도 조언을 얻곤 하는가 “대검찰청 DNA수사과장을 할 때 와이프가 많은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때 생물 성적이 좋진 않았다(웃음). 전문지식을 많이 배웠고, 일에 흥미를 느끼면서 동식물 DNA를 분석하는 법생물학팀을 대검 내부에 신설했다. DNA 수사분야에서 최고 권위가 있는 국제법유전학회를 아시아 최초로 유치한 것도 성과였다.”
―변호사로서의 관심 분야는 “중대재해, 선거, 노사관계, 지식재산권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오송 지하차도 사건 같은 대형 중대재해 사건을 책임지고 지휘하기도 했고, 대검 공공수사부에서 전국 선거 사건과 노사관계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경험이 있다. 지식재산권에도 관심이 많아 계속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27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과분한 혜택을 입었다. 지금까지는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해보고 싶다. 사회공헌활동을 해보는 것도 인생 2라운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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