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기댄 인재유치, 中에 다 뺏길 위기[기자의 눈/주현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3일 01시 40분


주현우·사회부
주현우·사회부
중국 ‘첸런(千人·천인)계획’에 참여했던 한 학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의 주요 대학 교수들이 동남아시아 대학들을 돌면서 연구실 설명회를 연 적이 있었다. 실력 있는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한중일 경쟁이었다. 설명회를 마치고 입학 신청을 받아보니 연구에 뜻이 있는 학생은 일본을, 연구비 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중국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한국을 선택한 학생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였다고 한다. 한국의 연구 환경이나 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한류’가 이유였다.

중국은 전 세계 인재를 빨아들이며 핵심 기술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호주 정부 싱크탱크는 지난달 ‘중국이 세계 핵심 기술 64개 중 57개를 선도하며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이 한국 기술을 탐낸다’는 것도 수년 뒤면 사라질 이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하이 유명 대학 학자들 사이에선 “중국이 곧 한국을 앞서고 배울 것도 없어질 것이다. 한국 박사 학위 논문은 말레이시아, 태국과 동급”이라는 말이 나돈다. 한국 과학 기술의 위상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뜻이다. 인재 확보에 소홀했던 대가를 이제야 받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첸런계획에 대한 대규모 조사에 나섰다. 2021년 1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자국 학자 44명이 첸런계획에 참여했다고 보도했고, 이후 정부에 연구비 사업 신청을 할 때 해외연구자금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됐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실태 파악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 보도(9월 30일자 A1면)를 통해 우리나라 학자 최소 13명이 첸런계획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첸런계획은 공식적으로 중단됐지만 중국은 ‘치밍(啓明·계명)’ 등 더 은밀한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한국은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기술인 반도체 분야에서 인재 및 기술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넘긴 전 대기업 임원이 최근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인재 잃은 외양간’을 이대로 방치하다간 한국은 중국의 기술 속국이 될지도 모른다. 한류와 BTS만 외치다간 국가 발전 동력을 경쟁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인재 한 명 붙잡는 데 정부가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인재를 황제처럼’ 모시는 중국에게서 배워야 한다.

#한류#인재유치#중국#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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