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쏟아지는 고령자 맞춤형 주택 공급 대책
정부, 초고령화 사회 진입 앞두고 다양한 노인 친화적 주택 확보 총력
실버타운-스테이 관련 규제 완화하고… 도심 폐교를 노인복지주택에 활용
은퇴 서울시민 위한 지방 신도시 조성
서울시 한복판에 있는 폐교에 실버타운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26일 공포한 ‘폐교재산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를 통해 폐교 재산을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실버타운 공급 확대를 위해 도심에 위치해 선호도가 높은 폐교를 노인복지주택 사업자에게 유무상으로 빌려주거나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폐교를 노인대학이나 노인요양시설, 치매요양원 등 노인복지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있는 폐교에 단순한 노인복지공간의 수준을 넘어 실버타운 조성이 가능해짐에 따라 적잖은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비율 20% 이상)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가 고령자 맞춤형 주거시설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반기 들어 거의 매월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비수도권에 대규모 실버타운 건설 계획을 잇따라 내놓으며 화답하고 있다.
●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거주
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움직임의 출발점은 올해 3월 21일 열린 민생토론회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첫 번째 과제로 “어르신들의 식사, 세탁, 돌봄, 요양 등 일상생활 서비스가 포함된 주택 보급 확대”를 꼽았다.
이를 구체화한 것인 7월에 발표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이다. 여기에서 시니어 레지던스는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실버스테이(민간임대주택), 고령자복지주택(공공임대주택) 등 고령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사·건강·여가 등)가 제공되는 고령층 친화적인 주거 공간을 의미한다.
활성화 방안은 시니어 레지던스 거주를 희망하는 고령층이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서 거주할 수 있게 초기 설립 비용 부담을 낮춰 공급을 늘리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간사업자가 전담하는 실버타운과 실버스테이에 대해선 설립·운영부터 부지 확보, 자금 조달 등 공급 단계 전반에 걸친 규제를 대거 완화하기로 했다. 또 공공이 전담하는 고령자복지주택은 공급 물량을 연간 1000채에서 3000채로 확대했다.
이어 8월에는 ‘서민·중산층 미래세대 주거 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통해 리츠 등 법인이 100채 이상 주택단지를 20년 이상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도록 허용했다. 이를 통해 리츠 등이 실버타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국토교통부는 8월에 2032년까지 추진할 ‘제3차 장기 주거종합계획’에서 시니어타운 건설과 매입 후 임대 운영 등으로 수익을 올리는 ‘시니어 리츠’를 통해 노인복지시설을 공급할 때 적용할 특례와 자금 지원 방안 등을 추가했다. 또 ‘헬스케어리츠’를 활용한 구체적인 실버스테이 공급 확대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련의 조치들로 시니어 레지던스를 설립할 때부터 위탁 운영사의 직원으로 운영 인력 배치가 가능해졌다”며 “상근 임직원을 둘 수 없어 인력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웠던 리츠나 펀드 등이 실버타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어 사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분양형 실버타운의 사업 가능 지역이 수도권 외곽 일부와 비수도권이 대부분인 인구 감소 지역에 국한된 점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폐교를 실버타운-실버스테이로
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고령자 맞춤형 주택 공급 확대 계획 가운데 일부는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지난달 27일부터 11월 26일까지 60일 동안 2024년도 고령자복지주택 2차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모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 24일과 26일에는 전국을 2개 권역으로 나눠 설명회도 가졌다.
고령자복지주택은 65세 이상 무주택 고령자에게 주거와 복지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기 위해 무장애 설계가 적용된 주거시설과 사회복지시설을 함께 설치한 공공임대주택이다. 2016년 공공실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9년 고령자복지주택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1000채 규모로 사업이 선정되는데, 올해의 경우 8월에 △강원 평창(50채) △충북 괴산(200채) △경기 고양시 덕양구 A-3지구(250채)와 A-5지구(250채) 등 4곳이 선정됐다. 이를 포함하면 현재까지 전국 84곳에서 8848채가 후보지로 선정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26일 공포한 ‘폐교 재산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를 통해 “폐교 재산을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하려는 자에게 유무상 대부 및 매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폐교 안에 있는 국유시설을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하려는 자에게 영구시설물을 축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폐교됐거나 폐교 예정인 학교 부지 또는 학교시설 등을 활용해 실버타운, 실버스테이 등을 지을 수 있게 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3월 1일 기준으로 전국의 폐교는 모두 3955곳. 이 가운데 매각하지 못한 채 보유 중인 폐교는 무려 1346곳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2조 원(장부가 기준)을 넘는다. 게다가 아직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폐교도 367곳에 달한다.
이번에 폐교를 노인복지주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보유한 폐교시설은 모두 6곳이다. 도봉구 도봉고, 강서구 염강초와 공진중, 광진구의 화양초, 성동구 덕수고(분교)와 성수공고 등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 폐교는 대부분 대지면적이 넓은 데다 지하철역이나 대로 등에서 접근하기 편리하다”며 “실버스테이 등으로 활용하기에 비교적 좋은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경우 2010년대 초부터 폐교 용지와 시설을 노인요양시설로 전환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우리나라 비수도권의 대도시 지역에서도 폐교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팔 걷은 지자체… 실버타운 등 조성 이어져
지자체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서울시와 충남도는 7월 17일 협약을 맺고 충남 보령시에 서울시민 3000가구가 이주해 거주할 수 있는 주택단지 ‘골드시티’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사업에는 보령시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충남개발공사 등도 참여한다.
협약에 따르면 5개 기관은 공동으로 △골드시티 후보지 조사 및 선정 △골드시티 협약 기관별 역할 분담 및 실무협의체 구성·운영 △골드시티 효과 분석 등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강원 삼척시에 1호 골드타운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삼척시 일대 50만 ㎡ 부지에 2700여 채 규모의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와 강원도, 삼척시, SH 등은 내년 중 공사에 착수할 목표로 후속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골드시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은 상황이다. SH가 올해 초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서울시민 10명 가운데 6명(58.5%)이 “골드시티로 이주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만 40세 이상 서울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들은 골드시티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로 ‘저렴한 주거비용’(40.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자연 환경’(27.9%), ‘자신 또는 가족의 건강’(20.2%) 순으로 뒤를 이었다.
골드시티는 은퇴한 서울시민이 거주하는 실버타운형 신도시다. 다만 사업방식은 일반적인 실버타운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을 떠나 보다 여유롭게 ‘인생 2막’을 보내고 싶은 서울시민에게 주택연금 등과 연계해 보령시에 지어질 신규 주택과 생활비를 공급하는 대신 이들이 보유한 서울시에 있는 주택은 SH에 팔거나 위탁해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임대한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으로의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서울지역 청년·신혼부부 주택난 완화 등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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