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 의무화 정책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지난해 환경부는 관련 정책을 사실상 철회하고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다만 정책 시행의 근거인 자원재활용법은 물론 환경부 고시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환경보호 정책 후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보증금제 대신 일회용컵 유상 제공 정책을 검토했으나 이 마저도 논란에 휩싸이며 추진이 무기한 연기돼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환경단체 등에선 “일회용컵 대책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 안 지키는 환경부
국회는 여야 합의로 2020년 5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도입에 관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의결해 같은 해 6월 9일 개정안을 공포했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공포 2년 뒤인 2022년 6월 10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돼야 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으로 구매할 때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이를 돌려받는 제도다.
하지만 환경부는 시행 직전인 2022년 5월 20일 “제도 도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행을 6개월 뒤로 미뤘다. 이후 같은 해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부터 일회용컵 보증제를 시행했다. 당시 환경부는 고시를 통해 2025년 말까지 관련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문제는 보증금제가 불편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발생했다. 카페 점주 등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보증금 300원이 가격 인상처럼 느껴져 매출이 감소할 수 있고 설거지 등 직원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경기도 어려운데 300원을 더해 팔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에 환경부는 국민적 수용성이 낮고,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비용에 비해 일회용컵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지난해 9월 일회용컵 보증금제 의무화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8월 “불가피한 사유 등으로 보증금 제도 시행을 유예하고 일부 지역에 우선 시행했다면 여건이 개선된 경우에는 조속한 시일에 자원재활용법 개정 취지에 맞게 전국적 시행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이후 환경단체는 일제히 “국경이 없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국가를 가리지 않고 일회용품 사용 금지 정책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있는 정책을 유예하며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사업에 참여했다가 수십억 원의 손실을 본 기업들도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조폐공사에 7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일회용컵에 붙이는 보증금 라벨 제조 업체, 배송업체 등이다.
● ‘일회용컵 유상 제공’ 정책 전환도 시작부터 꼬여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제 정책을 지방자치단체와 소비자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선 다시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야 하고, 환경부 고시도 고쳐 ‘전국 확대 의무화’ 조항 등을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법과 고시 개정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근 환경부는 법 개정을 위한 내부에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부 문건에 따르면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축소하고, 대신 일회용컵을 제공할 때 돈을 받는 방식의 ‘일회용컵 무상 제공 금지’ 정책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일회용 컵 판매수익은 일회용 컵 배출 및 회수 비용으로 사용하거나, 텀블러 등을 이용한 고객에게 혜택으로 주도록 강제하거나 권고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다만 문건에는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활용’, ‘소상공인 및 관련 업계가 국회를 대상으로 문제 제기토록 유도’ 등 여론전을 펴겠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됐다.
그러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여러 대안 중 하나로 나왔지만 당장은 하지 않기로 결정 난 사안”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결국 환경부는 법적으로 여전히 내년 말 일회용컵 보증금제 확대 시행을 앞둔 채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일회용컵 유상제공 중 어느 것 하나도 못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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