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출과 보험약관대출 받아서 ‘아도인터내셔널’에다 2000만 원을 입금했고, 이 많은 돈을 잃고 하루하루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자식에게 알려질까 전전긍긍 근심하면서 사람이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도에 사는 50대 정모 씨는 4000억 원대 투자금을 불법 조달한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업체 아도인터내셔널 관련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에 사기범들을 엄벌해달라며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중 사기로 돈을 날리게 됐다는 그는 “대한민국에 왜 이렇게 많은 사기집단들이 열심히 사는 시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지, 우리 법이 그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 같다”며 “중형으로 다스려달라”고 호소했다.
● ‘다단계 피해’ 눈물의 탄원 1500건
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아도인터내셔널’ 관련 사건 8건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들에는 올해 들어 피고인들에 대한 강력처벌·엄벌 탄원서가 1556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탄원서를 쓴 건 주로 50~60대 이상 고령의 피해자들로, 대부분 정 씨와 유사한 피해 사연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60대 피해자 김모 씨 역시 탄원서에서 “암 투병자도 몸이 아파도 사기당한 돈 때문에 일을 해야하고, 이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며 “사기범들에게 어떤 자비도 허용해선 안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 천막을 치고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주범 아도인터내셔널 대표 이모 씨 등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정부의 인가·등록 없이 4467억 원의 투자금을 받고(유사수신) 이 중 약 23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원금을 보장하겠다면서 ‘하루 2.5%의 이자’를 약속하며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사실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이자를 메우는 다단계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년간 끌어모은 투자자는 약 3만6000명,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는 2106명에 달했다. 이 사건은 올 3월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가 아도인터내셔널 계열사 대표를 대리해 논란이 일자 사임하기도 했다.
● 서민 울리는 다단계 사기, 다시 증가
주범 이 씨는 올 7월 1심에서 사기와 불법유사수신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양형기준상 일반 사기죄에 내릴 수 있는 최고 형량이었지만, 2000명이 넘는 피해자를 양산한 것에 비해선 형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는 1인당 피해액이 5억 원을 넘는 경우에 적용하는데, 이 사건 피해자 1인당 피해액은 수천만 원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적용되지 않았다.
서울 성동구의 최고급 아파트를 주소지로 등록한 이 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경제적 이유를 들며 국선변호인을 선임했고, 첫 공판기일에 변호인 변경 계획을 밝히며 재판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부당하게 재판절차를 지연할 경우 (다른 사건과) 병합 없이 선고 할 것”이라고 선을 긋자 그는 이달 7일에야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
다단계 사기 사건은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다단계와 같은 불법 유사수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수는 302건으로 2022년(255건)보다 18.4% 늘어났다. 코인 관련 유사수신 범죄가 많던 2020년(396건) 이후 감소하다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다단계 사기는 대표적인 서민 범죄로 다수의 피해자에게 회복되지 않는 피해를 안기는 경우가 많다”며 “증가세가 더 커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사전예방 대책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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