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식후 1분도 못쉬고 돌려”
‘소년이 온다’ 등 사흘간 53만부 팔려
초판-사인본 등 정가의 수십배 거래
논술 학원 ‘한강처럼 글쓰기’ 상술도
“노벨상 소식 이후 사흘간 1분도 안 쉬고 계속 인쇄기를 돌리는 중입니다.”
13일 오후 3시경 경기 파주시 천광인쇄사 입구에는 이제 막 인쇄된 소설가 한강(54)의 책이 높이 150cm 넘게 쌓여 있었다. 안에서는 쉴 새 없이 인쇄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한 직원 20명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표지를 찍어내느라 바빴다. 두 대의 인쇄기는 사흘간 24시간 ‘풀가동’ 중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한강의 저서 중 양장본이나 초판본, 친필 사인본은 정가의 수십 배 가격에 중고 거래됐다. 연세대 등 한강의 모교는 축하 메시지를 냈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 인쇄소는 사흘간 풀가동 ‘즐거운 비명’
한강 저서 품귀 현상에 인쇄소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자가 찾아간 천광인쇄사는 이날 하루 동안 한강의 책 2만5000부를 찍었다. 인쇄소 관계자는 “이번 주 찍은 한강 책만 7만 부가 넘는다”고 했다. 한때 종이 공급이 인쇄 물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인쇄소 관계자는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하고 있다”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책들은 10일 오후 8시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후 13일 오후 2시까지 사흘간 약 53만 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책은 ‘소년이 온다’(창비) ‘채식주의자’(창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순으로 판매량이 많았다.
한강의 모교 연세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강 수상은) 연세대의 자랑이며 보람인 동시에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긍지와 성취”라고 밝혔다. 이어 “윤동주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연세 문학인의 감수성인 동시에 140년 가까이 이어온 연세 교육의 지표”라고 축하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안연진 씨(20)는 “(한강의 수상이) 후배로서 열심히 공부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모 씨(22)는 “문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의 모교인 서울 강남구 풍문고도 교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풍문고의 자랑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 시민들 독서 열풍, 중고 거래선 ‘노벨상 프리미엄’
시민들 사이에서도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야외도서관 광화문책마당’에서는 한강의 책이 진열된 곳에 시민들이 길게 줄 섰다. 자녀를 ‘글쓰기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이 늘며 교육계도 들썩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 씨(38)는 “아이에게 글쓰기를 꼭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부터 글쓰기 학원을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논술학원들도 ‘한강처럼 글 쓰는 법’ 등의 문구를 내걸며 홍보에 나섰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소년이 온다’를 30만 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원가(1만3000원)의 20배를 넘는 가격이다. ‘소년이 온다’ 저자 서명본은 40만 원에 사겠다는 글도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초판 1쇄를 20만 원에 구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86)가 살고 있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선 이날 주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은 한 작가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한 작가는 고마운 마음만 표현하며 참석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이 너무 어렵다”며 “딸에게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열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리자 ‘잔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고 전했다. 이에 한 작가가 딸에게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잔치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못 하게 하느냐”고 답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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