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드리워진 ‘고령사회 그늘’]
선진국, 갱신때 실제 주행평가 점검
국내선 ‘조건부 면허’ 놓고 의견 갈려
“노인 이동권 침해” vs “안전관리 필요”
해외에서는 고령자의 운전면허 갱신 시 주행 가능 도로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놓고 ‘노인 이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과 ‘고령자 등 고위험 운전자를 선별해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8월 발간한 ‘고위험운전자 교통사고 추이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5년마다 면허를 갱신하도록 했다. 이때 담당 의사나 가족이 고령자의 건강이나 주행 능력에 우려를 표할 경우 운전면허 재심사 후 의료 평가에 따라 추가 주행 능력 평가를 진행한다. 또 거주지 인근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 면허 제도’를 시행해 고령자 교통사고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호주의 75세 이상 운전자는 매년 운전 주행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 면허를 처음 발급받을 때와 유사한 ‘면허 재심사’도 실시한다. 호주 역시 야간 운전 금지, 특정 지역 내에서만 운전 등 제한적인 조건을 둔 면허를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71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도록 했다. 특히 75세 이상 고령자나 법규 위반 경력이 있는 경우 운전기능검사를 치르도록 했다. 2022년부터는 비상자동제동장치, 페달 조작 오류, 급발진 억제 장치 등의 기능을 갖춘 고령자 특화 차량인 ‘서포트카’ 한정 면허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5월 정부는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조건부 면허제’는 신체적 질환 등으로 정규 운전면허 유지가 어려운 운전자가 제한된 운전 시간·거리 등 특정 조건하에서만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노인 이동권 침해’ 등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경찰청은 고령자뿐만 아니라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위험군의 경우 주행 능력을 평가해 이를 토대로 조건부 면허를 부여받는 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년에는 가상현실(VR)로 운전 능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평가 제도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조건부 면허제 도입에 대한 고령 운전자들의 반응은 나뉘는 분위기다. 최근 면허를 갱신한 조영규 씨(80)는 “주행 인지 검사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재시험을 보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사회 전체적인 안전을 위해 안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허강희 씨(79)는 “나이 먹은 사람이 사고 한 번 내면 전체가 그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난폭, 과속 운전은 오히려 젊은층에서 더 많은 것으로 안다”며 “면허 갱신 절차도 지금 정도면 충분히 자기 능력을 알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조승연 인턴 기자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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