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 등
6명이 사건 심리 가능해졌지만… 정당성 시비 우려, 결정 쉽지 않아
법조계 “17일 재판관 3명 임기 마쳐… 여야 1명씩이라도 서둘러 추천을”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정족수 7명을 채워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한 헌재법 23조 1항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17일 임기를 마치는 이종석 헌재 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헌재 재판관의 후임 공백에 따른 ‘헌재 마비’ 사태는 일단 피하게 됐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등 주요 사건 심리는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헌재법상 재판관 6명만으로도 탄핵심판 인용이나 위헌 결정 등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6명만으로 심리·결정할 경우 정당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위헌·탄핵 결정 등은 6명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야 인용할 수 있고, 1명만 반대하면 기각되는 만큼 주요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국회가 후임 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건 급증에 ‘일할 수단’ 찾은 헌재
헌재는 14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한 헌재법 23조 1항에 대해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 직무정지 상태인 이 위원장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가처분 신청은 이 위원장이 냈지만, 헌재 결정의 효력은 헌재가 심리 중인 모든 사건에 적용된다.
법조계에선 헌재 결정이 후임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고 있는 국회에 대한 ‘반격’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번에 퇴임하는 3명의 재판관은 모두 국회가 선출하는 몫이다. 헌재연구관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9명의 재판관이 성향에 관계없이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국회가 ‘식물 헌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으면 헌재의 사건 심리가 어려워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회가 이를 방치했고, 헌재로선 권한 내에서 일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했다는 취지다.
헌재의 결정은 헌법소원 사건이 급증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법소원은 2019년 2062건, 2021년 2201건, 지난해 1935건 등 최근 5년간 평균 2200건이 접수되고 있다. 정치적 파장이 크거나 민감한 사건도 많다. 헌재는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외에도 손준성 검사장에 대한 탄핵심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 권한쟁의심판 사건 등을 심리하고 있다. 사형제 관련 형법 조항과 연명치료 중단 관련 연명의료결정법 사건 등 사회적 파장이 큰 현안도 산적해 있다. 헌재가 가처분을 인용하며 “재판관 궐위로 인한 불이익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이 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란 분석이 나온다.
● 6명으로도 가능하지만 정당성 시비 우려
하지만 재판관 9명으로 운영돼야 할 헌재가 6명만으로 사건을 심리·결정하는 것에 대한 법조계의 우려도 크다. 법적으로는 심리·결정이 가능하긴 하지만, 정당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법이 재판관 7인 이상이 사건을 심리하도록 규정한 건 국회·대통령·대법원이 각각 지명한 재판관이 협력해서 치우치지 않게 심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라며 “6명으로도 심리가 가능하다고 하면 어느 한 축의 대표성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국회가 후임 재판관을 서둘러 선출해 헌재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민의힘은 여야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관례대로 합의해 추천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이 3명 중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나라의 기틀이 흔들릴 수 있는 사건을 심리하는 기관인 만큼, 헌재가 혼수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자체적으로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여야가 합의가 안 된다면 각각 1명씩이라도 서둘러 임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