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현장 증언 나선 정용국 씨
민주화운동 전시회 돕다 첫 증언
중3때 도청 주변 총격 상황 목격
희생자들 제대로 된 처우 받아야
“44년 만에 5월의 진실을 말해 마음이 편안합니다.”
인테리어 업체 사장 정용국 씨(60·사진)는 1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 전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달 24일까지 개최되는 전시회는 문화전당이 세워진 터가 예전에 광주읍성, 옛 전남도청이 위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정 씨는 한 달 전쯤 5·18민주화운동 주요 무대인 옛 전남도청 복원공사에서 나온 폐기물을 전시회 소품으로 사용하는 작업을 도왔다. 이를 계기로 용기를 내 5·18 경험을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증언했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정 씨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에 대항하는 시민 행렬에 참여했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후 옛 전남도청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집단 발포로 5·18 전체 사망자(166명)의 40%에 달하는 67명이 숨졌다.
정 씨는 집단 발포 이후 중앙초등학교 인근 전봇대에서 카빈소총을 든 20대 청년 뒤에 숨어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총성과 함께 20대 청년이 등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정 씨는 “총을 맞은 청년은 처음 본 사람이었고 아직까지 생사를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총격 상황이 평생 악몽으로 남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정 씨는 “나중에 군복무를 할 때 당시 청년이 저격병 조준사격으로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44년 만에 5월 진실을 밝혀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교복을 입고 있어 추가 조준사격을 하지 않은 것 같아 고마운 생각도 들고 저격병이 용기를 내어 양심고백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 씨는 “(나는 5·18 당시) 민주화를 염원하던 평범한 광주 시민이자 증인”이라며 “5·18 때 고초를 겪은 희생자들이 제대로 된 처우를 받기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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