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광 거점 육성위해 34곳 운영… 20년간 600억 들였는데 효과 미미
26곳은 외국인 관광객 통계도 없어
셀프 평가에 기준 미달에도 해제없어… “30년된 특구 기준-제도 손질 필요”
《‘돈 먹는 애물단지’ 관광특구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관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관광특구’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94년 8월 경주, 제주, 설악산, 해운대, 대전 유성이 최초 관광특구로 지정된 데 이어 30년간 전국 13개 시도 34곳으로 늘었지만 대다수가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외국인 방문객 10만 명 기준 등 특구 지정 요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기가 손에 꼽을 정도다. 전국 관광특구에 매년 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호텔과 식당들의 줄폐업이 잇따르는 등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기가 관광특구라고요?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는데….” 11일 오후 6시경 대전 유성온천관광특구에서 만난 김민준 씨(38)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 안산시에서 왔다는 김 씨는 “빼곡히 들어선 오피스텔과 텅 빈 식당만 보여서 유명 관광지인지 몰랐다”며 “관광특구라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한때 1000만 관광객으로 붐볐던 유성온천관광특구는 오간 데 없었다. 관광특구 중심부에 위치한 야외 온천에선 일부 노인들이 족욕을 즐기고 있었지만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손님이 없는 텅 빈 식당 내부나 아예 저녁 장사를 접고 문을 닫은 가게도 다수 눈에 띄었다.
또 다른 관광특구인 경남 창녕군 부곡온천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27년째 특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퇴근 후 찾는 것 외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고 말했다.
● 관광객 통계도 없는 ‘유명무실’ 관광특구
관광특구는 정부가 전국 주요 관광지를 국제적 관광거점지역으로 육성하고자 1993년 관광진흥법에 따라 처음 마련됐다. 이듬해 8월 경주, 제주, 설악산, 해운대, 대전 유성이 최초 관광특구로 지정돼 현재 전국 13개 시도 34곳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재 관광특구는 이름만 남았다. 관광특구는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만 명을 넘고 관광 안내 및 공공 편익시설, 기반시설(숙박) 등을 충족해야 하지만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 대다수였다. 동아일보가 34곳의 관광특구를 대상으로 최근 3년(2021∼2023년)간 외국인 관광객 방문 현황을 조사한 결과 26곳은 아예 외국인 관광객 통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통계를 집계하는 8곳 중 6곳은 관광객 수가 지정 요건에 미치지 못했다.
● 쏟아부은 예산만 수백억…효과는 ‘미미’
정부는 매년 관광특구에 30억 원 규모의 예산을 내리고 있다. 지자체마다 정부 공모 사업을 따내는 구조인데, 공모에 선정되면 지자체마다 사업 성격에 맞춰 1억∼5억 원 규모의 예산이 지원된다. 법령 개정으로 공모제가 도입된 2004년 이후 매년 30억 원씩 20년간 총 600억 원의 예산이 전국 각 관광특구에 투입된 셈이다.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디어 조명, 안내판 설치, 특구 상징 조형물 구축 등 예산 사용처가 시설 확충에만 편중된 탓이다. 실제 대전 유성특구는 2020년 4억3000만 원을 지원받아 숲길 조성에 나섰지만 관광객 증가 효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경남 통영시 미륵도 특구도 지난해 2억9000만 원을 받아 경관 조명을 설치하는 데 그쳤다.
이런 탓에 당초 취지였던 지역 활성화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유성호텔 등 특구 내 호텔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고, 한때 200만 명이 다녀간 부곡온천의 경우 2017년 문을 닫은 뒤 지금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박상곤 연구원이 발표한 ‘관광특구 지정 효과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관광특구의 경제지표를 분석한 결과 해당 지역 경제 상황은 평균적으로 5.5%가량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 엉터리 ‘셀프 평가’…기준 미달에도 해제 없어
수년째 관광특구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지정 해제가 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관광특구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광특구에 대한 평가는 각 지자체에서 매년 진행하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3년에 한 번 실시한다. 문체부는 2004년 특구 지정 및 운영 권한을 각 시도지사에게 이양했기 때문에 권고 이외 지정 해제 등을 시행할 수는 없다. 지자체는 적합성(시설), 편의성(통역 등), 프로그램, 방문객 수 등을 따져 우수, 보통, 미흡, 부진으로 평가한다. ‘부진’을 받을 경우 지정이 해제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특구들은 ‘보통’ 이상의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심사를 하는 평가위원들이 해당 지자체 내 대학의 교수 등으로 구성돼 사실상 ‘셀프 평가’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박 연구원은 “평가 항목 지표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부풀려진 추정치들로 좋은 점수를 얻어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30년이 넘은 옛 관광특구의 기준과 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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