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 풍자 연극을 준비하다 사전검열을 당하고 대사 수정 등을 요구받은 연출가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부의 검열과 수정 요구는 헌법이 보장한 예술·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취지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0단독 최미영 판사는 연출가 A 씨가 국가와 국립극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6일 “피고들이 원고에게 2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때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2013년 5월 박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다가 인턴 성추행 의혹으로 경질됐다. A 씨는 윤 전 대변인을 풍자하는 연극을 준비하던 중 같은 해 9월 10일경 국립극단 사무국장으로부터 노란 봉투에 담긴 문서를 받았다. 이 문서에는 특정 대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라는 취지의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A 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만인 2022년 10월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2013년 9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립극단 기획공연 관련 현안 보고’ 문서 내용을 근거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문서에는 당시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다른 정치풍자극에 관해 “연출가에게 결말을 수정하게 하고 과도한 정치적 풍자를 대폭 완화하도록 지도하는 등 조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재판부는 “정부의 연극 대본 검열과 수정 요구는 헌법이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활동을 직접 제약한다”며 “법치주의 국가의 예술에 대한 중립성에 관한 문화예술계의 신뢰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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