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에 꼭 필요한 ‘초순수’… 13년 만에 국산화 물꼬 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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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 내년 첫 공급
반도체 등 정밀산업에 쓰는 초순수…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실증 플랜트’ 세워 국내 생산 성과… 내년 SK하이닉스 생산공정 투입
2040년엔 47조 원 시장으로 성장… “국내 기업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한국수자원공사(수공)의 초순수 실증 플랜트 현장에서 수공 직원이 초순수 생산을 위한 전기탈이온 공정을 점검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전해질도,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을 전문 용어로 ‘초순수(UPW·Ultra Pure Water)’라고 부른다. 실제로 ‘순도 100%’의 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순수는 그에 가까운 물이다. 물을 가득 채운 축구 경기장에서 참깨 한 알 크기 정도의 유기물 등을 허용하는 수준이다.

초순수는 여러 정밀산업에서 사용된다. 특히 반도체 제조에 많은 양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nm(나노미터) 단위의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미세한 이물질 등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보급으로 고사양 반도체 생산이 늘어난 최근에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1장을 만드는 데 초순수 7t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동안 국내 초순수 시장은 설계, 시공, 운영 등 전반에 걸쳐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의존해왔다. ‘반도체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초순수 관련 기술은 자립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수자원공사(수공)가 SK하이닉스에 국내 기술로 생산한 초순수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해외 의존도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웨이퍼를 처음 생산한 1983년 이후 41년 만에 ‘초순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 수공, 첫 국산 초순수 SK하이닉스에 공급

21일 수공에 따르면 국내 기술로 만든 초순수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1∼6월)부터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공정에 투입된다. 환경부가 2021년 6월 초순수 국산화를 정부 과제로 선정하고 국내 기업들과 경북 구미의 SK실트론 2공장에 ‘초순수 실증 플랜트’를 만든 지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반도체를 제조할 때 나오는 부산물, 오염물 등을 세척하기 위해 쓰이는 초순수 시장은 현재 일본과 미국 등이 장악하고 있다. 국가별 초순수 기술 특허 현황을 살펴보면 일본이 56%로 압도적 1위다. 미국은 16.8%다. 두 나라가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일찍부터 초순수를 전략산업 핵심 기반 기술로 인식하고 정부 주도로 산업을 육성해 온 덕분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주도로 구리타 등 세계적인 초순수 생산 기업을 키워냈다. 미국도 국방부를 중심으로 1987년 ‘세마텍’이라는 협회를 만들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초순수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뒤늦게 초순수 생산에 나섰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결정적 계기였다.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했던 수공은 2021년 환경부 주관 국가 연구과제를 맡아 국내 기술로 초순수 생산에 성공했다.

수공 관계자는 “일본과의 무역 갈등 등 대외 변수가 발생했을 때 초순수는 언제든 전략물자화될 수 있다”며 “국가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초순수 생산기술 자립 및 전문기업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초순수 국산화로 주권 기술 확보”

세계적 물 산업 조사기관인 GWI에 따르면 전 세계 초순수 시장은 연평균 2.8%씩 성장하고 있다. 2021년 28조 원이었던 시장 규모가 2040년 47조6000억 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2022년 2조 원이었던 초순수 시장은 2040년까지 4조3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생산된 초순수가 경쟁력을 갖추면 기술 자립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내년까지 초순수 관련 설계·운영 기술은 100%, 핵심 장비는 70%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0년까지는 국가 주도로 초순수 선도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도록 ‘초순수 플랫폼 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국내 초순수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입과 기술 개발 등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수공은 SK하이닉스와의 협약을 계기로 국내에 ‘기술 개발→시설 운영→기술 축적→시장 확대’로 이어지는 초순수 순환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된 오염된 용수를 정수해 재사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물 재활용이 가능해져 하천에서 끌어오는 물 공급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수공과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내 반도체 공장에 이런 물 공급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윤석대 수공 사장은 “초순수 국산화는 미래 산업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주권 기술”이라며 “물을 활용한 각종 원천기술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기술 발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도 “국내 초순수 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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