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겨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지자체가 여건에 맞게 대상·기준·방식 등을 정해 조례나 업체들과 협약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의무화 철회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종합감사에 출석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 개선 방향을 보고하면서 “현 제도를 획일적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무 협의 중인 안으로 국회·지방자치단체·업계 등과 협의 후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보증금제 개선 방향으로 지역 여건에 따른 맞춤형 시행, 대형시설·일정구역 중심 점진적 확대, 프랜차이즈 단위 자발적 시행 촉진 등을 고려 중이다. 김 장관은 “이렇게 되면 지자체가 소통과 지역 여건을 거쳐 하기 때문에 수용성이 제고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은 최소화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보증금 액수도 지자체가 정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현재는 보증금 300원을 현금이나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는데, 향후 식음료 프랜차이즈 업체의 앱을 통해서도 포인트로 반환받을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이날 환경부의 결정으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전국 확대 시행 정책은 사실상 완전히 폐기됐다. 여야 합의로 2020년 5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 의결을 통해 도입된지 4년 만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으로 구매할 때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이를 돌려받는 제도다.
●폐기도 유지도 아닌 어정쩡한 정책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시행 초기부터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개정안 공포 2년 뒤인 2022년 6월 10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돼야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시행 직전인 2022년 5월 20일 “제도 도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행을 6개월 뒤로 미뤘고, 같은 해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 운영 형태로 일회용컵 보증제를 시행했다.
당시 환경부는 고시를 통해 2025년 말까지 관련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다만 이후 보증금제가 불편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제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카페 점주 등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비용 부담에 대한 반발이 커졌고, 소비자를 중심으로 불편의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환경부는 국민적 수용성이 낮고,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비용에 비해 일회용컵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높지 않는 등의 이유를 들며 지난해 9월 일회용컵 보증금제 의무화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8월 “조속한 시일에 자원재활용법 개정 취지에 맞게 전국적 시행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이후 환경단체의 “친환경 정책 후퇴”라는 비판과 “왜 법을 지키지 않느냐”는 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환경부의 고민은 커져갔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유상 제공’ 정책 전환도 고려했다. 하지만 일회용 컵 보증금제 개선을 위한 환경부 내부 논의자료에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활용’ 등 이른바 여론전을 추진하려던 정황이 알려지면서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결국 24일 환경부는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지방자치단체와 소비자 자율에 맡긴다는 방향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기로 결론내렸다. ‘전국 확대’ 방침은 유지하면서 의무화 계획은 철회하는 어정쩡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 장관은 24일 국정감사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일괄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할 경우 디지털 취약계층의 이용 제약, 농어촌 등 이동거리가 긴 지역의 접근성, 매장 업무 부담 등이 우려된다”며 정책 전환의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다시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야 하고, 환경부 고시도 고쳐 ‘전국 확대 의무화’ 조항 등을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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