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기 앞둔 주말 홍대거리 현장
경찰복 분장, 유사시 혼동줄 우려… 이동 통제했지만 곳곳에서 혼란
‘사람 넘어졌다’ 오인 신고에 깜짝… 인파 사고 막을 법, 처벌규정 없어
《내일 이태원참사 2주기… 인파 몰린 주말 홍대거리 안전불감증 여전
핼러윈을 5일 앞둔 26일 오후 10시경.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주변은 핼러윈 코스튬 차림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개중에는 경찰 제복 코스튬 차림도 있었다. 2년 전 ‘구조 지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이 바로 경찰 코스튬이었다. 참사 뒤 인파 사고를 막기 위한 법 개정도 이뤄졌지만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평가도 나온다. 곳곳에서 여전히 ‘안전 불감증’의 위험 신호가 나타났다.》
26일 오후 10시경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복합문화공간 KT&G상상마당 앞에 있는 ‘인파 현황판’ 스크린에는 ‘보행 혼잡도―매우 혼잡’ 표시가 떴다. 그 아래는 토요일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핼러윈을 5일 앞두고 경찰과 마포구가 합동 단속을 벌이며 대로에 펜스를 설치해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지만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셀카를 찍는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방해하거나 일부는 인도에 설치된 변압기 위에 올라가는 등 위험한 행동을 보였다. 한 클럽 앞에선 경찰 근무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클럽 직원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진짜 경찰 근무복과는 다소 달랐지만 유사시에는 시민들이 혼동할 우려가 컸다. 2년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졌을 때 현장에 경찰들이 도착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핼러윈 코스튬(분장 의상)’인 줄 알고 진로를 비켜주지 않기도 했다.
● 참사 2주년, 여전히 거리 곳곳 위태
이날 기자는 경찰과 함께 이태원 참사 2주년(29일)을 앞두고 홍익대 주변 거리 곳곳을 다니며 인파 상황을 살폈다. ‘이태원 풍선 효과’로 시민들은 참사 이후 이태원 대신 홍익대 인근으로 몰리는 모습이었다. 서울경찰청 기동순찰대, 마포경찰서 등 동원된 경찰 인력만 331명이었다. 골목마다 1층 주점들은 만석이었고, 일부 가게에서는 길게 줄 선 손님들이 차도까지 침범했다. 미리 핼러윈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은 코스튬을 착용했는데 일부는 총이나 칼 모형을 들고 있었다. 경찰은 다가가서 진짜 흉기가 아닌지 확인했다. 술집과 식당, 상점가의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근처에서는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 소리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만약 누군가 깔려 비명을 지르거나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밤 12시를 지나 27일 0시 반경에는 “인파에 밀려 사람이 넘어졌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놀란 경찰이 확인한 결과 한 남성이 걸어가다가 넘어져 무릎을 가볍게 다친 상황이었다. 인파 탓이라는 내용은 오인 신고였다. 일부에서는 핼러윈을 앞두고 ‘차 없는 거리’로 바뀐 줄 몰랐던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거리 곳곳에선 이태원 참사 당시 논란이 된 ‘경찰 코스튬’을 입은 시민들도 있었다. 실제로 이태원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선 경찰 제복을 판매하거나 대여하고 있었다. 27일 찾은 이태원의 한 코스튬 대여점에선 여성용 경찰 제복을 이미 누군가 대여 중이었다. 남아 있는 남성용 경찰 제복은 3시간 동안 3만 원에 대여 가능했다. 이곳 사장은 “최근 들어 경찰복이 2번가량 대여됐다”며 “경찰 코스튬은 대여하기 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고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경찰’ 키워드 대신 ‘폴리스 제복’ 등을 검색하면 실제 경찰 근무복과 흡사한 옷들이 줄줄이 나왔다. 경찰대 출신의 홍성환 변호사는 “아무리 핼러윈 코스튬이라도 경찰 공무원과 식별이 곤란한 유사 제복, 유사 장비를 착용하는 것은 시민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인파 사고 막을 법, 처벌 규정은 없어
다수의 인파가 몰리는 체육 행사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걷기 페스티벌 등 19일과 26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체육 행사를 점검한 결과 인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관리 요원이 부재한 탓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 여러 번 벌어졌다. 아이들과 한 체육 행사에 참여했던 호모 씨(41)는 “1300명 이상 참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대회인데 안전 요원은 보이지 않아 걱정이 컸다”며 “일반 시민들이랑 뒤섞이기도 해서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고 전했다.
2년 전 참사를 계기로 다중밀집 사고를 막기 위해 ‘인파 1000명 이상’ 행사에 적용되는 국민체육진흥법도 개정돼 안전 조항이 생겼지만 이를 어겨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올 3월부터 시행된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참가자 1000명 이상인 다중밀집 체육 행사에선 주최자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 교육 및 점검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수립한 안전관리계획을 지방자치단체 등에 검토받을 의무가 없고, 처벌 조항도 없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체육 행사 등 다수 인파가 밀집하는 행사에서 안전관리계획을 처벌 조항 없이 강제를 안 시키면 권고 사항으로 해석한다”며 “의무 사항으로 진행해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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