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정신 장애가 있는 가족만 참관한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면 실질적 의미의 참관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대마) 혐의로 기소된 A 씨(64)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이달 8일 이 같은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9년 5월 서울 구로구 자신의 아파트 안방 금고에 대마 약 0.62g을 보관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1, 2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초 경찰은 A 씨의 20대 딸이 마약을 투약한 혐의가 있어 아파트 압수수색을 하던 중 보관중이던 대마를 발견했다.
문제는 당시 압수수색 현장에는 A 씨의 딸만 참여했던 점이었다. 2016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정신병적 증세로 인해 모두 13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후 ‘경도 정신지체,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2017년 서울가정법원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됐다’는 이유로 딸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결정을 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선 경찰도 압수수색 전 확보한 딸의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 기록을 통해 정신 장애 상태를 알고 있던 정황이 드러났다. 수사과정에서 딸이 입원했던 병원으로부터 정신과 담당의의 진료기록과 검사결과기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딸이 현행범 체포됐을 당시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조서 열람 과정에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심돼 재차 조서 내용의 요지를 설명했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대법원은 이같은 정황을 종합할 때 경찰의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보고 결론을 뒤집어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주거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거주자나 이웃, 지방공공단체의 직원이 참여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A 씨의 딸이 참관했지만,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참여 능력’이 없어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참여하는 이는 최소한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참여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 영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행위로부터 당사자를 보호하는 등의 헌법적 요청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 씨 딸의 압수수색 절차 참여능력이 부족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수사기관도 그의 정신과 치료 내역 등으로 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A 씨 딸만 참여시킨 압수수색은 위법하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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