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발 물러섰지만 의정갈등 여전…의료계, ‘2025년 증원’ 만지작

  • 뉴스1
  • 입력 2024년 10월 30일 13시 27분


정부, 휴학계 승인…전공의·의대생은 ‘2025년 증원 철회’ 고수
교육부 ‘탄력적 학사 운영’ 제…의료계 “터무니없다” 반발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교에서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2024.10.29/뉴스1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교에서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2024.10.29/뉴스1
지난 2월부터 줄곧 동맹 휴학 불가 방침을 고수해오던 정부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제적을 코앞에 두고 휴학을 승인함에 따라 여야의정협의체 출범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참여 조건으로 내세웠던 의 협의체 참여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의정갈등 사태의 핵심에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은 여전히 ‘2025년 증원 철회’를 하지 않는 이상 복귀나 협의체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데다 야당도 이들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이주호 장관은 전날 “학생복귀와 의대 학사 정상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이 개인적인 사유로 신청한 휴학에 대해서는 대학의 자율 판단에 맡겨 승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간 동맹 휴학은 불가하며 내년 1학기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학생들에 한해서만 휴학을 승인하겠다는 ‘조건부 승인’ 방침을 내걸었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철옹성 같았던 휴학 승인 불가 방침에서 정부가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대한의학회와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정부에 이달 말까지 의대생 휴학을 승인해야 한다는 협의체 참여 조건을 내건 데다 대학 총장들과 종교 지도자들까지 휴학 승인을 건의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는 물론 대한의사협회, 의대교수 단체 등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휴학 승인으로 협의체에 참여하게 된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는 이 장관의 발표 직후 “현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불 보듯 명확한 상황”이라며 의대생, 전공의들의 협의체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여전히 ‘2025년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협의체 참여는 물론 내년에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의 참여 선언 직후에도 손정호·김서영·조주신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는 확고한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후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뒤에도 “협의체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대전협 일곱 가지 요구사항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년 봄에도 전공의들과 학생들은 각각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7500명 의학 교육은 불가능하다. 2025년 증원부터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한 의대 교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입장은 확고하다”며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는 협의체에 참여해 전공의가 돌아올 환경을 만들겠다는데 그들이 원하는 핵심은 그게 아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는 어떤 꾐도, 협박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1학년생만 7500명이 된다는데 그것도 의대생들이 돌아올 때의 이야기고, 이들이 내년에도 오지 않으면 그 내후년은 더 상상초월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 겸 제8차 늘봄학교 범부처 지원본부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2024.10.16/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 겸 제8차 늘봄학교 범부처 지원본부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2024.10.16/뉴스1
이에 교육당국도 나름의 계책을 세웠다. 당장 내년에 7500여 명의 신입생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이대로는 교육이 힘들기 때문에 각 대학이 탄력적 학사 운영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온라인 백브리핑에서 “현재 6년제 의대 교육과정을 대학이 자율적 또는 탄력적으로 하거나 압축해서 5.5년이나 5.7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대학에 단축 방안을 강요하거나 방침을 정한 게 아니라 대학이 원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 한 해가 아니라 앞으로 의대 6년과 인턴, 레지던트 등 수련 과정까지 11년 동안 과밀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는 데 있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대학에서는 올해 휴학한 1학년의 경우 예과 2년 과정을 ‘1년 6개월’로 압축해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올해 휴학한 24학번은 내년 입학하는 25학번보다 6개월 빨리 본과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론 수업이 중심인 예과 때는 7500명이 수업을 듣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실습수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본과에서는 겹치는 인원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의료계는 터무니없는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대학 학사 일정이 고무줄이냐. 대학을 왜 4년으로 하나. 3년제 대학을 만들든가 딱 반 잘라 2년을 만들어도 되지 않나”라며 “이런 걸 골몰하니 학생들이 돌아가겠나. 내년 신입생들까지 윤석열정권 타도를 외칠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 의대 교수는 “가르치는 교수들과 배우는 학생들은 왜 생각을 안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수업을 압축해서 한 학기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을 늘린다고 한다면 지금도 엄청난 양을 공부해야 하는 의대생들이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냐”며 “그럼 가르치는 교수들은 그 스케줄을 어떻게 다 감당하라는 건지, 어떻게 교육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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