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앳된 모습의 10대 아이들 300여 명의 다짐과 같은 합성이 공연장을 꽉 채웠다. 밤송이 같은 머리나 폴짝폴짝 가벼운 걸음, 또래들 공연을 하나하나에 꺄륵꺄륵 웃는 모습. 진행자의 레크리에이션에는 상품을 받겠다며 연신 엉덩이를 들썩이고 목이 터져라 환호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행을 저질러 법원에서 ‘소년보호기관 위탁’ 처분을 받은 비행소년들이었지만, 이런 모습은 영락없는 ‘애들’이었다.
이날 서울가정법원은 ‘슈퍼스타일 2024-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라는 주제로 청소년 문화제를 개최했다. 대법원 후원 하에 서울가정법원, 의정부지법, 인천가정법원, 수원가정법원, 춘천지법, 대전가정법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소년보호기관 위탁 청소년의 교화와 재비행 예방을 위한다는 취지로 매년 열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사회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공연을 직접 준비하며 노력을 통해 성취의 소중함과 협동의 가치를 배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2012년 시작해 올해로 12회 째를 맞이했다.
소년보호기관 위탁은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의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을 아동복지시설에 6개월간 위탁하는 처분이다. 소년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풀어주면 부모의 방치나 주변 영향으로 다시 비행을 저지를 우려가 높은 경우 내려진다.
이날 문화제에는 6개 소년보호기관에서 약 300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했고, 약 140명의 아이들이 치어리딩, 밴드공연, 연극, 합창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3시간 반 동안 이어진 공연 내내 자리를 지켰다.
“한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치어리딩을 준비한 서울 마자렐로센터의 청소년들은 풍성한 술이 달린 파란 응원복을 갖춰입고 응원가 ‘질풍가도’에 맞춰 절도있는 응원을 펼쳤다. 하늘을 두드리듯 힘차게 내지르는 주먹에 객석에 모인 또래 청소년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 목청을 높였다.
흰 셔츠 위에 남색 가디건을 단정하게 맞춰 입고 무대에 선 서울 ‘돈보스코오라토리오’ 센터의 청소년들은 뮤지컬 ‘빨래’의 곡을 합창으로 준비했다. 무대위에 서니 이전까지 장난기 가득하던 청소년들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부른 노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향하는 다짐의 말 같기도 했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이외에도 대전 효광원 청소년들의 밴드 공연을, 서울 살레시오 청소년센터 청소년들이 연극과 합창 공연을 이어갔다. 경기도의 ‘세상을품은아이들’, ‘나사로청소년의집’ 청소년들도 각각 수개월간 맹연습한 밴드와 뮤지컬 공연을 선보였다.
6개의 팀은 공연 주제에 맞게 베스트 퍼포먼스상, 희망의 하모니상, 최고의 화합상, 아름다운 감동상, 열정의 무대상, 불굴의 의지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연습을 하면서 점차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뿌듯해서 힘들어도 꾹 참고 노력했다”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친구들과 다 같이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을 인솔한 보호기관 관계자는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내고 다 같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잘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문화제, 소년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교육과 재비행 예방, 건전한 성장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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